어떻게 하루라도 그냥 넘어가는 날이 없다. 홍혜인은 통화를 끝낸 뒤에도 한참 동안 핸드폰을 내려놓지 못했다. 상대가 끊은 지는 이미 몇 초가 지났지만 화면이 자동으로 꺼질 때까지 천장을 올려다봤다. 드라마 촬영도 막바지니 이번에는 정말 고생했다고 밥 한 끼 사주는 줄 알았다. 식당은 너희가 예약하라는 말에 의심을 잠깐 내려두었던 게 화근이라면 화근이었을까.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라고만 생각하고 별다른 고민 없이 메뉴판을 들여다보던 과거를 이제 와 탓하는 것도 우습기는 했다. 소속사 단체 회식이 마무리 될 즈음이면 주머니를 뒤적이다 지갑을 사무실에 두고 온 것 같다고 아쉬운 연기하는 인간이 오석민이었다. 홍혜인은 그 모습을 몇 년 째 지켜봤으면서 또다시 속아 넘어간 것이고.
"거기도 식사 끝났대요?"
"다 먹은 거지 겸아?"
"네. 나가시죠."
"이 지랄을 떨어놓고 旼炡이한테 요즘 회사 사정이 어쩌구하면서 계산 떠밀었기만 해봐."
"에이, 설마…요."
대답이 작아지는 걸 보니 그렇게 말하는 본인도 어딘가 마뜩잖은 모양이었다. 핸드폰을 챙겨 들려던 홍혜인은 잠시 멈칫하고 유리잔 쪽으로 손을 뻗었다. 반쯤 남아 있던 탄산수를 단번에 비워냈으나 속은 여전히 더부룩하기만 했다. 피차 서로 좋은 감정이 없다고 해도 계약 기간 끝날 때까지는 한솥밥 먹는 식구였다. 당분간은 계속 얼굴 보고 지내야 하니 이쪽도 마지못해 나온 건데, 정말 누구 말마따나 어디 가서 사람 약 올리는 법을 따로 배워오는 건지. 홍혜인은 깊은 한숨을 내뱉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어왔을 때와 달리 방을 나서는 걸음은 다소 무거웠다. 옆에 있는 성한겸도 괜스레 쭈뼛거리며 홍혜인의 눈치를 살폈다. 계단 내려가는 발소리가 유독 크게 공간에 울려 퍼졌다. 오代表와 단 둘이 있었을 金旼炡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한 것을 넘어서 머리까지 지끈거렸다. 재계약을 두고 별별 헛소리를 염불처럼 외웠을 꼴은 안 봐도 비디오였다. 1층에 다다르자 홍혜인은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봤다. 오픈키친과 로비를 구분하는 커다란 어항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고, 그다음으로는 보였던 것은.
"오 代表는?"
"일 있다고 먼저 갔어."
"그러면 너 혼자 방에 있던 거야? 이거 진짜 미친 새,"
"아냐. 방금 나갔어 代表님."
금방이라도 뒤쫓아 갈 것처럼 눈빛이 번득이던 홍혜인이 그제야 시선을 거두었다. 성한겸도 어물쩍거리며 앞을 막으려다 그녀의 누그러진 표정을 확인하고 구석으로 비켜섰다. 다행이다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도 잠시, 홍혜인은 어쩐지 미심쩍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눈길은 다시 金旼炡에게로 향했다.
"계산 안 하고 튄 거야?"
"걱정 마. 오늘은 내가 선수 쳤어."
金旼炡은 조용히 웃으며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듯 두어 번 가볍게 흔들기까지 했다. 지갑은커녕 카드 비슷한 것 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홍혜인은 엄지를 치켜세웠고, 성한겸은 소리 없이 손뼉을 치며 만족스러운 박수를 보탰다. 두 사람의 반응에 짧게 웃은 金旼炡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출입문으로 향했다. 홍혜인이 자연스레 그녀의 옆에 발을 맞췄다.
"겸아, 넌 집에 어떻게 갈 거야?"
"대로변에 나가서 택시 잡아 타려고요."
"그래? 잠깐만 있어 봐."
식당 입구 즈음에서 멈추어 선 홍혜인은 지갑에서 오만원권 두어장을 꺼내 성한겸에게 내밀었다. 조심히 들어가. 밴에 있던 의상은 장 室长이 반납했다니까 회사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고. 성한겸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이면 아예 손안에 지폐를 넣어주고 억지로 주먹을 쥐게 만들었다. 이어서 金旼炡까지 내일 보자며 인사를 하자 그는 얼떨결에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래. 잘 가 한겸아. 홍혜인은 거의 등 떠밀듯 남자를 배웅했다. 그리고는 멀어지는 뒷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보다 조용히 물었다. 서초로 갈 거지? 대답은 듣지도 않았으면서 일단 택시를 부르기 위해 핸드폰 잠금부터 풀었다.
"다음에는 법카 받아서 우리끼리 오자."
"응."
"내일은 한 8시쯤에 데리러 갈게."
"그래. 언니 혹시 뒤에 약속 없으면 나랑 술 한잔하고 들어갈래?"
와인은 기껏해야 반병 마셨는데 그새 취해서 잘못 들었나 싶었다. 그만큼 당황스러운 제안이었다. 반면 상대방은 무슨 일 있었냐는 것처럼 태연한 얼굴로 저를 바라보고 있다. 홍혜인은 입술을 달싹이다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旼炡아. 저녁이 아니라 아침인 거 알지? 상황이 상황인 터라 스케줄을 깜빡한 거라 여겼으나 이번에도 표정 변화 하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또 이렇게 시간 날지 모르잖아. 밥만 먹고 바로 헤어지긴 좀 아쉬워서."
"혹시…오代表랑 무슨 일 있었어? 재계약 얘기한 거지? 뭐래? 그때 영화 엎어진 거 또 너 탓해? 아니 미친 인간이 지가 다단계 같은 투자사 믿고 대본 받아왔으면서 어따대고."
말이 더 이어지기도 전에 홍혜인은 재빨리 연락처를 뒤적였다. 눈에 익은 이름을 발견한 순간, 새하얀 손가락이 화면을 덮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핸드폰을 가져가 등 뒤로 숨기는 것이었다. 홍혜인은 입도 다물지 못한 채로 앞을 쳐다봤다.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제대로 된 판단이 서지 않았다.
"진짜 그런 거 아니야. 그분은 늘 그랬듯 자기 자랑만 1절부터 4절까지 돌림노래로 반복하셨어. 나도 평소처럼 한 귀로 흘려들었고."
"……"
"그냥. 맥주라도 한잔 하고 가자는 거지. 누구씨 때문에 밥은 따로 먹었으니까."
"……"
"조금 그래? 하긴 아침에 픽업 오려면 피곤할 텐데 술은 다음에,"
"됐어요. 맥주는 제가 살 거니까 배우님은 내일 아침에 해장국이나 같이 먹어주세요."
金旼炡은 작게 웃었다. 이렇다 할 대답 없이 그저 짧은 숨을 내쉬고 고개를 한 번 끄덕였을 뿐이었다. 짧게 눈을 맞춘 홍혜인은 아무 말 없이 모자를 벗어 그녀의 머리에 씌워주었다. 챙이 눈썹을 살짝 덮자 金旼炡이 익숙한 듯 고개를 숙였고,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홍혜인이 金旼炡에게 바짝 붙어 오른쪽 어깨를 살짝 감쌌다. 내딛는 걸음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차분했다.
"잠깐만. 신발 벗어야지."
흰 러그 위로 푹신하게 발을 디뎠다. 기운이 빠진 듯 허리를 숙이던 金旼炡은 한쪽 운동화를 억지로 벗겨내다가 중심을 잃고 휘청했다. 반사적으로 손을 뻗은 刘知珉이 얄팍한 팔뚝을 부여잡았다.
"안 취했다며."
"안 취했어 그냥…"
말끝을 흐린 金旼炡이 부축을 받으며 현관을 겨우 벗어났다. 힘이 빠진 걸음으로 복도를 지나쳐 거실에 다다르자 별다른 고민도 없이 천천히 소파에 몸을 붙였다. 앉았다기보다는 맥없이 기대었다는 쪽에 더 가까운 자세였다. 刘知珉은 더 이상 움직일 생각이 없다는 듯 조용히 숨을 고르는 金旼炡을 바라보다 모자를 벗어 스툴 위에 대충 던져뒀다. 그다음에는 소파 밑으로 들어간 슬리퍼 한 짝을 꺼내 가지런히 정리해두고 바닥에 주저앉아 金旼炡을 올려다봤다.
"씻겨줘요?"
"조금만…있다가."
고개를 젖힌 채 천장을 바라보던 金旼炡은 어느 순간 눈을 감았다. 무릎 위에 놓인 손끝이 살짝 떨리더니 이내 힘이 풀린 채 그대로 멈췄다. 어깨는 천천히 내려앉았고, 앉은 자세는 점점 더 느슨해졌다. 정적 속에서 들려오는 숨결은 낮고 일정했다. 커튼 사이로 스며든 희미한 불빛이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刘知珉은 살짝 몸을 틀어 테이블 위에 핸드폰을 확인했다. 벌써 열한 시가 넘어 있었다.
"…안 자고 뭐 했어요."
속삭이듯 물어보는 목소리는 약간 늘어졌다. 소파에 반쯤 기대 잠든 줄 알았는데 잠깐 눈만 감고 있던 모양이다. 긴 속눈썹 아래로 말간 숨소리가 고르게 이어졌다. 뜬금없는 질문을 꺼낸 것 외엔 그다지 달라진 게 없었지만, 말끝에는 취기와 피로가 엉켜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드라마 봤지."
"……"
"旼炡xi 기다리면서."
한동안 적막이 이어졌다. 刘知珉은 바닥에 앉은 채로 무릎을 안았다.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던 탓인지 마지막 말은 거의 혼잣말처럼 들렸다. 에어컨의 미세한 작동음만이 너른 공간을 가득 채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金旼炡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호선을 그렸다. 입술 사이로 바람 빠지는 소리가 작게 흘러나왔다. 웃음인지 한숨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가늘고 얇았다.
"왜 기다렸어요?"
"旼炡xi랑 같이 자려고."
金旼炡이 고개를 끄덕이며 제 옆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마치 주인에게 허락이 떨어진 강아지처럼 刘知珉은 바닥에서 일어나 소파 끝자락에 걸터앉았다. 몸을 살짝 틀어 金旼炡을 바라본 뒤에는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넘겨주었다. 취기 섞인 숨결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무슨 일 있었어요?”
거리는 좁혀졌으나 거실은 여전히 고요했다. 옷이라도 갈아입혀 줘야 하나 고민할 찰나, 金旼炡이 눈을 뜨고 刘知珉을 바라봤다. 허공에서 눈빛이 뒤엉켰다. 대답은 없었다. 그저 한참을 바라보기만 하다가 아주 느릿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단정하고 조용한 부정이었다.
"내일 아침에 스케줄 있지 않아요?"
"응. 여덟 시 반까지 앞에 나와 있기로 혜인언니랑 약속했어요."
"그렇구나."
刘知珉은 한쪽 손으로 무릎을 쓸며 물었다. 꿀물이라도 타줄까요. 이번에도 金旼炡은 말 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출근 시간이 엇비슷한 건 다행이었지만, 뭐라도 먹여서 보내려면 이제 슬슬 재워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촬영장에서 숙취로 덜 고생하겠지. 발그레한 뺨을 검지로 살며시 눌러본 刘知珉이 쓰게 웃었다. 확실히 처음 만났을 때보다 살이 내렸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검사님."
"네."
"내일 뭐 해요."
"오전에는 사무실에서 업무 보고, 오후에는 공판 나가요."
달라진 건 그 뿐만이 아니었다. 마지못해 장단을 맞춰줬던 시절과 비교하자면 저 역시. 刘知珉은 후드집업 소맷자락을 만지작거리는 손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검사님…"
"왜요."
"주말에는 뭐 할 거예요."
"상황 봐서 旼炡xi랑 집에서 영화 볼 것 같은데요."
"나 없으면요."
"그러면 뭐…잠깐 회사 갔다가……글쎄요. 거기까지는 생각 안 해봤어요"
金旼炡은 설핏 웃으며 刘知珉의 손가락을 조몰락거리기 시작했다. 그게 뭐야. 가만히 손을 내어준 刘知珉은 능청스럽게 고개를 갸웃거리다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 그러다 문득, 조심스레 손끝을 감싸 쥐었다. 시선은 여전히 金旼炡에게 머물러 있었다.
"검사님."
"네."
"刘知珉."
"응."
"…知珉언니."
낯선 호칭이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刘知珉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입술을 달싹이다가 마른침을 삼켰다. 잠깐 명치에 숨이 걸렸다. 호칭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입 안이 바짝 말라붙는 느낌이었다. 답지 않게 우물쭈물거리던 刘知珉이 뒤늦게 金旼炡을 바라봤다. 맑은 눈동자는 오롯이 한 사람을 담고 있었다. 분명 에어컨은 켜져 있을 텐데 목덜미가 조금씩 달아올랐다.
"검사님 이거 좋아했잖아요."
"…내가요?"
"응. 그때 막 물도 쏟고, 그러다가 나 기다리고."
"그걸 기억해요?"
"당연하지. 이렇게 손도 주고, 接吻도 하고, 그다음에는…그랬잖아."
괜히 머쓱해진 刘知珉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해버렸다. 그러자 金旼炡은 자기를 보라는 듯 손을 잡고 흔들었다.
"知珉언니."
刘知珉은 허탈하게 실소를 터트리며 金旼炡을 마주 봤다. 취기 때문인지 평소보다 거리낌 없이 저를 가지고 놀았다. 그런 金旼炡을 보고 있자니 刘知珉의 심장도 덩달아 빨리 뛰기 시작했다. 도저히 맞받아칠 수 없게 만드는 태도에 결국 刘知珉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주 불러줄 걸 그랬다."
"아니 뭐…딱히 그렇지는 않지만, 싫다는 건 더더욱 아니고."
"知珉언니."
"……"
"그런데 언니는 진짜 좋은 사람이에요."
다소 맥락 없는 칭찬이었다. 대화의 흐름을 좀처럼 따라가기 어려웠다. 刘知珉은 멍하니 金旼炡을 바라보며 눈만 깜빡였다. 그러고 보니 반동거를 하며 함께 지내는 동안 술에 취한 모습은 거의 보지 못했다. 스태프들과 회식하다가 중간에 따로 나온 金旼炡과 전화 한 적은 몇 번 있어도, 지금처럼 마주 보고 앉아서 얘기했던 날은.
기억을 되뇌던 刘知珉은 金旼炡의 손을 잡아 제 머리 위에 올려뒀다.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는데 金旼炡은 익숙한 손길로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예쁘다 刘知珉."
"…큰일이네."
"뭐가요."
"이러면 손만 잡고 못 자는데. 내일도 지각할 거고."
물끄러미 刘知珉을 바라보던 金旼炡의 입꼬리가 다시 한번 부드럽게 휘어졌다. 장난처럼 던져진 말이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아주 가볍지도 않았다. 손끝이 머리카락 사이를 천천히 훑으며 刘知珉의 관자놀이 언저리를 가만히 눌렀다. 깊고 느린 움직임 속에서 무언가 아슬아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刘知珉은 고개를 돌리려다 말고 다시 정면을 바라봤다. 서로의 숨결이 닿을 듯 가까운 거리였다. 金旼炡이 팔을 뻗자 刘知珉은 조용히 다가가 그 품에 안겼다. 안겼다기보다는 안아주는 자세였지만,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신경 쓰는 사람 또한 없었다. 그렇게 여름밤은 고요히 깊어갔다.
햇살은 커튼 틈새로 조용히 스며들었다. 먼저 눈을 뜬 刘知珉은 몸을 일으켜 조용히 부엌으로 향했다. 냉장고를 열어 재료들을 확인한 뒤에는 간단한 아침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콩나물국을 끓이고 계란말이를 부치는 동안에도 시선은 자꾸 침실 쪽으로 향했다. 최대한 조용히 움직였지만 팬이 달궈지는 소리나 물 끓는 소리가 날 때마다 멈칫하고 누군지도 모를 이의 눈치를 살폈다.
어느 정도 식탁이 차려지고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한 刘知珉은 슬리퍼를 끌며 침실로 걸어갔다. 어쩌다 보니 자정을 한참 넘어서야 잠이 든 만큼 옆자리에 비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다. 마음 같아서는 마냥 끌어안고 오후까지 푹 자고 싶었지만, 이쪽은 고작해봤자 인사고과 개판 내고 승진 밀리는 직장인이고 이불에 파묻혀 있는 사람은. 刘知珉은 속으로 한숨을 삼키고 매트리스 끝에 걸터앉았다. 旼炡xi. 씻고 나와요. 매니저님 오기 전에 밥 조금만 먹고 가요. 애정이 감춰지지 않는 목소리였다.
"저기요. 배우님."
"……"
"일어납시다요. 지각하면 홍 매니저님이 내 번호 차단할 수도 있어."
그냥 말만 하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金旼炡은 베개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웅크렸고, 刘知珉은 망설이지 않고 이불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따뜻한 체온이 그대로 전해졌다. 맨 허리에 닿은 손끝이 닿자 金旼炡이 꿈틀거리며 반쯤 몸을 일으켰다. 刘知珉은 그런 그녀의 입술에 刘知珉이 짧게 입을 맞춘 다음 먼저 침실을 나섰다.
복도를 따라 부엌까지 걸어간 刘知珉은 제법 익숙한 손놀림으로 식기를 정리했다. 냉장고를 열어 숙취해소제를 꺼낸 뒤 물잔 옆에 가지런히 두고, 혹시 빠뜨린 건 없는지 식탁을 둘러보다 복도 쪽으로 몸을 비스듬히 기울였다. 머리를 대충 묶고 느릿느릿 걸어오는 金旼炡을 확인한 뒤에는 조용히 의자를 빼주고는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확실히 그 전보다 사람 사는 집다워진 아침 풍경이었다.
"검사님."
"응."
"나 몰래 산삼 같은 거 먹어요?"
"글쎄요."
金旼炡이 식탁에 앉으며 던진 농담에 刘知珉은 어깨를 으쓱이며 씩 웃었다. 아직 완전히 잠이 깨지 않은 듯 목소리가 약간 가라앉아 있었지만 컨디션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콩나물국을 한 번 떠 먹고 고개를 끄덕인 金旼炡이 숙취해소제를 손에 들고 흔들어보며 다시 물었다. 오늘 야근해요?
"旼炡xi 일찍 들어오면 안 하지."
"그러다 일 밀리면 부장님한테 혼나지 않아요?"
"칭찬보다는 그게 더 취향이라서 괜찮아요."
刘知珉이 태연하게 받아치며 계란말이 하나를 金旼炡 밥그릇 위에 올려뒀다.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이번에는 웃지도 않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결국 金旼炡이 젓가락을 들다 말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여간 한 마디를 안 져."
"안 져주는 게 뭔지는 새벽처럼,"
역시나 아무렇지 않게 말하자 金旼炡은 제 밥그릇 위에 있던 계란말이를 집어서 입을 막아버렸다. 刘知珉의 뻔뻔한 대답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물잔을 쓰윽 밀어주기도 했다. 물잔을 집어 든 刘知珉은 천천히 한 모금 넘기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젓가락을 들었다. 金旼炡이 한쪽 눈썹을 치켜들며 노려봤지만 刘知珉은 태연하게 멸치볶음을 집어먹었다. 잠깐의 정적 끝에 金旼炡이 못 이긴 듯 고개를 저으며 작게 웃었다. 분위기는 다시 평온해졌고, 식탁 위의 따뜻한 온기가 그대로 이어졌다.
"몰랐는데 나 살림에도 소질이 있는 것 같아요."
국을 뜨려던 金旼炡은 순간 멈칫했다. 숟가락을 쥔 손이 허공에서 굳었고, 그녀는 알 수 없는 눈초리로 刘知珉을 바라봤다. 刘知珉은 목덜미를 긁으며 눈을 피했다. 그럼에도 金旼炡이 시선을 거두지 않으니 결국 얼버무리듯 말을 이어갔다. 아니 그냥. 어필 한 번 해봤어요. 오늘따라 국이 맛있길래. 어쩌면 별다른 뜻 없이 한 얘기일 수도 있었다. 다만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말한 본인도 선뜻 짚어낼 수 없었다. 제 앞에 있는 金旼炡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 꿈같은 일상이 조금 더 오래 이어지면 좋겠다는 막연한 상상이 머릿속을 스쳤을 뿐이었다. 설령 그것이 헛된 바람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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