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소장님 (3) 193 話 所長 (3)
나는 편한 옷이 좋다. 이왕이면 약간 커서 헐렁하고 쓸데없는 게 붙어 있지 않은 옷이. 가볍고 부드러운 재질이면 더 좋고. 아무튼 갑갑한 건 별로건만.
我喜歡穿舒適的衣服。最好是稍微寬鬆、沒有多餘裝飾的衣服。如果材質輕盈柔軟就更好了。總之,我不喜歡緊繃的感覺。
‘정장 싫다.’ 「我討厭西裝。」
핏을 살리는 맞춤정장. 뭐 보기는 그럴듯하더라. 뿐만 아니라 다른 일상복도 전부 몸에 맞게 갖춰 입으라는 소리를 듣고 말았다. 집안에서까지야 터치 안 하겠지만 밖에선 근처 마트엘 가더라도 신경을 쓰라나.
量身訂製的西裝能展現身材曲線。雖然看起來確實不錯,但我卻被要求所有日常服裝都要合身。雖然在家裡不會被干涉,但據說即使只是去附近的超市,在外面也要注意穿著。
던전 들어갈 때야 옷자락을 잡히거나 걸리면 곤란하니 싫어도 몸에 딱 맞는 거 입었지만 평소엔 편하게 살고 싶다고. 심지어 9월로 접어들었긴 하나 아직 더운 날씨다. 제대로 챙겨 입기엔 몸도 마음도 피곤한 기온인 것이다.
雖然進入地下城時,為了避免衣服被抓住或絆倒,即使不喜歡也得穿合身的衣服,但平時我只想穿得舒服。況且,雖然已經進入九月,但天氣仍然炎熱。在這種氣溫下,要好好打扮,身心都會感到疲憊。
‘분위기도 벌써부터 피곤하고.’ 「氣氛也已經讓人感到疲憊了。」
묵직한 스타일의 차 뒷좌석에 혼자 앉아 있으려니 딴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운전기사와 보조석의 수행원도 검은 정장 차림이었다. 둘 다 해연에서 보내 준 A급 헌터였다.
獨自一人坐在厚重風格的車子後座,思緒不斷飄向他處。司機和副駕駛座的隨行人員都穿著黑色西裝。兩人都是海淵送來的 A 級獵人。
원래는 노아와 동행할 생각이었지만 석시명이 S급 헌터를 만나러 가면서 같은 S급 헌터를 수행원으로 대동하는 것은 상대에게 시비를 거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 하였다. S급 헌터도 부려먹는 나, 라며 선방 날리고 시작하는 짓이라나.
原本打算和諾亞同行,但石錫明說,去見 S 級獵人時,如果帶著同為 S 級獵人的隨行人員,可能會被對方視為挑釁。他說這就像是先發制人,擺出「連 S 級獵人都能使喚」的姿態。
덕분에 차 안에는 침묵만이 내려앉았다. 먼저 말 걸기 뭔가 어색하기도 했다.
多虧如此,車內只剩下沉默。主動開口說話總覺得有些尷尬。
괜히 휴대폰을 꺼내어 시간을 확인했다. 약속 시간까지는 30분 훨씬 넘게 남아 있었다. 나이도 어리고 등급도 낮고 사회적으로도 부족한 만큼 이르게 도착해서 기다리는 편이 낫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我無謂地拿出手機確認時間。距離約定時間還有超過三十分鐘。因為對方說,我年紀又輕、等級又低,社會經驗也不足,所以最好早點抵達等候。
‘성현제는 시간에 맞춰 오는 타입이라고 했었지.’
「成賢濟是那種會準時抵達的人。」
약속 시간 가지고 기선 제압하는 편은 아니라고 석시명이 말해 주었다. 그래도 만에 하나 늦게 나타난다면 날 확실히 누를 심산일 테니 조심하라 충고했다.
石時明告訴我,成賢濟不是那種會利用約定時間來壓制對方的人。但他還是提醒我,萬一對方遲到,那肯定是有意要壓制我,所以要小心。
이런저런 것들을 가르쳐 주면서도 석시명은 성현제가 나를 진지하게 대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나도 어느 정도 동감하고 있었고.
石時明一邊教我這些,一邊似乎認為成賢濟不會認真對待我。我也多少有些同感。
약속 장소에 나타나서 단순한 변덕이었고 이미 질려 버렸다, 라고 말해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 아예 바람맞을 가능성도 있지 싶었다.
就算他出現在約定地點,說這只是一時興起,他已經厭倦了,我也不會感到驚訝。我甚至覺得他有可能會放我鴿子。
‘…면접 보러 가는 기분이네.’
「……感覺像是要去面試。」
그것도 아무것도 없는 자격미달 고졸이 어떻게 턱걸이로 통과해서 단순 인사 담당도 아닌 대기업 회장 앞에 나서야 하는… 은, 딱히 다를 것도 없구나. 회귀 전을 생각하면 더더욱 기죽는다.
而且還是個什麼都沒有、資格不符的高中畢業生,好不容易才勉強通過,要站在的不是普通的人事主管,而是大企業的會長面前……嗯,其實也沒什麼不同。想到回歸前,就更讓人氣餒了。
약속 장소인 호텔 앞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직원이 나와 맞아 주었다. 호화로운 로비에는 각 잡고 줄 선 호텔 직원들밖에 없었다. 설마 호텔을 통으로 비운 건 아니겠지. 평일이라 해도 예약 손님이 있었을 텐데.
抵達約定地點的飯店門口時,等候在那裡的員工出來迎接我。豪華的大廳裡,只有整齊排列的飯店員工。該不會是把整間飯店都清空了吧?即使是平日,也應該有預約的客人才是。
하지만 엘리베이터로 안내되는 내내 손님으로 생각되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회의실이나 식당 하나도 아니고 진짜 전체 다 전세 냈나.
然而,在被引導至電梯的過程中,卻沒有看到任何像是客人的身影。這不是只有一間會議室或一間餐廳,是真的把整棟都包下來了嗎?
‘…크루즈도 날려먹는 인간이니, 뭐.’
「……畢竟是連郵輪都能炸掉的人,嗯。」
라고 해도 과하다. 얼마야 이게. 적당히 상식선에서 놀면 안 되냐.
話雖如此,這也太誇張了。這得花多少錢啊?就不能在常識範圍內玩嗎?
“여기서부터는 한유진 님께서만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從這裡開始,只有韓有辰先生可以進入。」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복도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세성 길드원이 말했다.
搭乘電梯上樓後,在走廊入口等候的星辰公會成員說道。
“수행원들은 이쪽에서 대기해 주십시오.”
「隨行人員請在此處等候。」
세성 쪽 사람들도 이 안쪽으로는 들어가지 않는다 하였다. 신원이 확실한 비각성자 호텔 직원 몇뿐이었다. 약간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홀로 걸음을 옮겨갔다. 어둑한 조명 아래 바닥에는 부드러운 카펫이 깔려 있어 발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약속 시간까지는 아직 이십여 분쯤 남았다.
星辰公會的人也說他們不會進入裡面。只有幾名身分確認的非覺醒者飯店員工。我帶著些許忐忑的心情獨自走了進去。昏暗的燈光下,地板鋪著柔軟的地毯,幾乎聽不到腳步聲。距離約定時間還有大約二十分鐘。
‘먼저 들어가서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가 성현제가 나타나면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인사하고.’
「先走進去坐著等,等成賢濟出現後,再自然地站起來打招呼。」
석시명이 가르쳐 준 것을 머릿속으로 되새기며 문을 열었다. 넓고 조용한 라운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벽면을 가득 채운 유리창 너머로 어두워져 가는 하늘이 보였다. 몇 발짝 걸어가다가 우뚝 멈추고 말았다.
我一邊在腦中反芻著石時明教我的話,一邊打開了門。寬敞又安靜的休息室映入眼簾。透過整面牆的玻璃窗,能看見漸漸昏暗的天空。我走了幾步,便停了下來。
‘…이건 예상에 없었는데.’ 「……這不在預料之中啊。」
훤히 트인 창가 자리에 앉아 있는 남자가 보였다. 의자 등받이에 느긋하게 상체를 묻고서 시선을 이쪽에 두고 있다. 긴 다리는 가볍게 한쪽 다리 위에 얹은 채였다.
我看到一個男人坐在窗邊開闊的座位上。他悠閒地將上半身靠在椅背上,視線朝著我這邊。他將一條長腿輕輕地搭在另一條腿上。
나와는 달리 너무 여유만만해서 살짝 짜증이 날 정도였다. 그런데 왜 벌써 와 있냐. 일단 다시 걸음을 옮기면서 머리를 굴렸다. 늦어서 죄송하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늦진 않았잖아. 많이 기다리셨냐고 물어? 하지만 난 늦지 않았다. 일찍 왔다고.
他不像我,太過從容不迫,讓我有些惱火。但他為什麼已經來了?我一邊重新邁開腳步,一邊絞盡腦汁。我該說抱歉我遲到了嗎?但我沒有遲到啊。我該問他等了很久嗎?但我沒有遲到。我來早了。
테이블 앞까지 다다랐다. 성현제는 말없이 옅게 미소 띤 채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我走到桌子前。成賢濟沒有說話,只是微微笑著看著我。
“한가하셨나 봅니다.” 「看來您很閒。」
머리를 거치지 않고 반사적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솔직히 할 일 참 없어 보였다. 그래도 부지런하시네요, 라고 할 걸 그랬나. 이것도 좀 비꼬는 느낌인데. 무난하게 일찍 나오셨군요, 라거나. 아니다, 그냥 평범하게 인사를 했어야 하는데.
這句話沒經過大腦,反射性地就脫口而出。老實說,他看起來真的很閒。不過,我應該說「您真勤勞」嗎?這聽起來也有點諷刺。還是說「您這麼早就出來了」比較好?不對,我應該只是普通地打個招呼。
“음, 세성 길드장님.” 「嗯,世成公會長。」
안녕하십니까, 는 뭔가 아니고 그간 무탈… 은 며칠 지나지도 않았고. 즐거운 근신 시간 되셨습니까, 는 장갑이고. 쳐다만 보지 말고 댁도 뭔가 말을 좀 해라. 해 줘.
「您好,這不是什麼……這段時間都還平安……也沒過幾天。您度過了一段愉快的禁閉時光嗎?這只是個手套。別光看著,您也說點什麼吧。說啊。」
“이렇게 일찍 나오시는 일은 없다 들었습니다만 의외네요.”
「我聽說您從來沒有這麼早出來過,真是出乎意料。」
“내 파트너와의 첫 만남을 소홀히 여길 순 없지.”
「我可不能輕忽與我搭檔的第一次見面。」
“그래서 호텔까지 통으로 비우셨습니까?”
「所以您把整間飯店都清空了?」
“작은 성의라네.” 「這是一點小心意。」
그쪽과 나의 크기 관념이 많이 다른 듯한데. 자꾸 툭툭대려는 것을 억눌러 참았다. 그간 너무 버릇이 되어 버렸어.
看來你我對於「大小」的觀念差異甚大。我強忍住想回嘴的衝動,畢竟這段時間以來,我已經太習慣這樣了。
어쨌든 바람맞지는 않았다. 먼저 나와 주기까지 했으니 긍정적인 신호로 봐도 되겠지. 물론 안심할 수는 없다. 내가 반대쪽 의자에 앉자 성현제가 자세를 바로 했다.
反正沒有被放鴿子。他甚至還先出來了,這應該可以看作是個正面的訊號吧。當然,還不能完全放心。我一坐到對面的椅子上,成賢濟就坐正了身體。
“최근에 제가 사육소를…….” 「我最近把飼育所……」
말하다 말고 퍼뜩 명함이 떠올랐다. 명함 건네주면서 자연스럽게 사육소 이야기를 꺼낼 생각이었는데. 그 전에 성현제가 더 늦게 등장해야… 아, 몰라. 호텔 전세 낸 것부터가 기선 제압의 일종이 아니었을까.
我話說到一半,突然想起名片。本來想著遞出名片,然後很自然地提起飼育所的事。但那之前,成賢濟應該要再晚一點登場……啊,算了。包下整間飯店這件事,不就已經是一種先發制人了?
“명함부터 받으시죠.” 「請先收下名片。」
인벤토리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석시명 씨에겐 미안하지만 처음부터 글러먹어서 가르쳐 준 대로 따라가긴 힘들 듯합니다. 애초에 하루아침에 유능하고 점잖은 사업가 흉내를 낼 수 있을 리 없잖아.
我從物品欄中取出名片遞了出去。雖然很對不起石始明先生,但從一開始就搞砸了,看來很難按照他教的去做。畢竟,怎麼可能一夜之間就模仿出一個有能力又穩重的商人呢?
“한유진 소장님이라.” 「韓俞辰所長啊。」
“세성 길드장님께서도 한 장 주시지요.”
「星辰公會會長也給一張吧。」
원래 주고받는 거 아니더냐. 성현제가 내게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깔끔하네. 명함에 적힌 연락처는 내가 아는 것과는 달랐다.
難道不是有來有往嗎?成賢濟將自己的名片遞給了我。真簡潔。名片上寫的聯絡方式和我所知道的不同。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기승수 사육소를 새롭게 정비할 예정입니다. 따라서 기존의 계약 조건을 일부 수정하였으면 합니다.”
「您應該已經知道了,我們預計重新整頓圈養型魔獸飼育所。因此,希望能夠修改部分的現有合約條件。」
해연이야 문제없고 브레이커 쪽도 문현아가 긍정적으로 대답해 주었다. MKC야 망했으니 남은 건 세성과 한신이었다. 세성의 동의까지 얻어내면 한신도 반대하진 않을 거라고 하였다.
海淵沒有問題,破壞者那邊文賢娥也給予了肯定的答覆。MKC 已經完蛋了,剩下的就是世性和韓新。據說只要獲得世性的同意,韓新也不會反對。
“크게 바뀌는 부분은 없습니다. 기존 각 길드에서 맡아 주었던 보안을 사육소 직속으로 변경하는 것이 중점입니다.”
「大致上沒有什麼變動。重點在於將原本由各公會負責的維安工作,改由飼育所直接管轄。」
바뀌는 거 별로 없다, 라고 말은 했지만 결국 각 길드의 간섭을 줄이겠다는 뜻이었다. 사육소의 보안을 5대, 이제는 4대 길드의 헌터들이 맡은 현재로서는 자연스럽게 정보도 유출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누굴 만나고 무엇을 하는지 속속들이 알게 되는 것이다.
「其實沒什麼變化。」我嘴上這麼說,但這終究代表著要減少各公會的干涉。目前飼育所的維安是由五大,不,現在是四大公會的獵人們負責,資訊自然而然會洩漏出去。我會見了誰、做了什麼,他們都會一清二楚。
그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為了阻止那件事。
“거절하지.” 「我拒絕。」
예? 하고 되물을 뻔한 것을 눌러 참았다. 느긋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我差點就要脫口問「咦?」了,但還是忍住了。悠閒的聲音接著響起。
“이미 끝난 계약을 불리하게 수정할 이유는, 당연하게도 없다네.”
「當然沒有理由,去修改一份已經結束,而且對我們不利的合約。」
그야 그렇다. 문제는 성현제가 제안을 받아들이게 할 만한 미끼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었다. 석시명과 머리 맞댄 채 고민해 보았지만 괜찮은 생각이 떠오르질 않았다.
的確如此。問題是,沒有什麼誘餌能讓成賢濟接受提議。我和錫希銘絞盡腦汁,卻想不出什麼好辦法。
“원하시는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請說出您的願望。」
“역시 한유진 씨는 이르군.”
「果然韓悠辰先生還是太早了。」
“…예?” 「…… 咦?」
“다시 바로 앉게.” 「重新坐好。」
성현제의 말에 반사적으로 등을 바로 세웠다. 어느샌가 테이블 쪽으로 몸을 빼고 있었다.
<p>聽到成賢濟的話,我反射性地挺直了腰。不知不覺間,我的身體已經往桌子那邊傾斜了。</p>
“들어설 때 한 번, 테이블 앞에서 두 번, 자리에 앉아서 세 번. 짧은 시간 만에 유진 군의 표정은 총 여섯 번 흐트러졌어.”
「進門時一次,餐桌前兩次,坐下後三次。在這麼短的時間內,宥鎮的表情總共變了六次。」
무심코 뺨을 매만졌다. 몇 번 당황하긴 했지만 그렇게 티가 많이 났나.
無意識地摸了摸臉頰。雖然有好幾次感到驚慌,但有那麼明顯嗎?
“그래서 실격입니까?” 「所以,我被取消資格了嗎?」
“깃털도 덜 난 새끼 새를 둥지 밖으로 내던질 만큼 매정하진 않다네. 내 파트너는 아직 어리고 미숙하니.”
「我還沒冷酷到會把羽翼未豐的雛鳥丟出巢外。我的搭檔還年幼又稚嫩。」
관대한 척 미소 짓는다.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니 고맙기는 하네.
我裝出寬厚的樣子微笑。他們能這麼想,我倒是挺感謝的。
“하지만 한유진 군, 내 소유물은 무슨 짓을 해도 괜찮아. 허술해도 되고 초라해도 되지. 내 손에 고가의 펜이 아닌 서툴게 깎은 판촉물 연필이 들려 있다 해도 나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은 달라지지 않는다네. 세성의 길드장은 수십 수백을 호가하는 펜을 얼마든지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인지하고 있으니까. 오히려 연필의 가치가 올라갈 수도 있겠지.”
「不過韓宥辰,我的所有物不管做什麼都沒關係。就算粗糙、就算寒酸也無妨。就算我手上拿的不是昂貴的鋼筆,而是削得很差的促銷鉛筆,人們看我的眼神也不會改變。因為所有人都知道,成賢會長隨時都能買下數十、數百支昂貴的鋼筆。說不定反而會讓鉛筆的價值提升呢。」
성현제의 손이 나를 가리키듯 부드럽게 움직였다.
成賢濟的手輕柔地動著,彷彿在指向我。
“반면에 파트너는, 다르다네.” 「相對地,夥伴就不同了。」
의자가 조용히 밀리고 그가 몸을 일으켰다. 원래도 장신이긴 했지만 이렇게 앉은 채로 올려다보자 유독 더 거대하게 느껴졌다.
椅子安靜地被推開,他站起身。他原本就很高大,但這樣坐著抬頭看他,卻感覺他特別巨大。
“동등한 선에 서 있고 서로 인정한 관계지. 다시 말해 한유진 군이 부족하게 비친다면.”
「我們是站在平等線上,互相認可的關係。換句話說,如果韓有辰先生看起來有所不足的話。」
성현제가 걸음을 옮겼다. 테이블을 돌아 내 쪽으로 다가온다. 그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시선을 억지로 잡아챘다. 슈트 끝자락이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어깨 위에 손이 얹혔다.
<p>成賢濟邁開了腳步。他繞過桌子,朝我走來。我強迫自己移開追隨著他動作的視線。西裝的下襬從我的視野中消失,一隻手搭上了我的肩膀。</p>
“내게도 그 영향이 미치게 된다네. 무엇보다도 유진 군은 내 유일한 파트너니까. 내가 인정하고 동등하게 받아들인 사람이 형편없다면 결국 내 안목 또한 의심받고 말겠지. 유유상종이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那也會影響到我。最重要的是,宥鎮是我的唯一搭檔。如果我認可並平等對待的人表現不佳,那我的眼光最終也會受到質疑。不是有句話叫物以類聚嗎?」
나직한 웃음소리가 머리 위에서 흩어졌다. 성현제의 옆에 나란히 선 내 모습을 상상하자 눈앞이 다 아찔해졌다. 공포 저항이 없었더라면 그만두겠다고 소리쳤을지도 모른다. 누가 봐도 부족하지, 당연히.
<p>低沉的笑聲在我頭頂散開。光是想像我與成賢濟並肩而立的模樣,就讓我眼前一陣暈眩。如果沒有恐懼抗性,我可能早就大喊著要放棄了。任誰來看都不夠格吧,那是當然的。</p>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목소리가 이어졌다.
<p>不知是知道我的心聲,還是不知道,聲音繼續說道。</p>
“그러니 끝까지 최저선에도 다다르지 못한다면.”
「所以,如果到最後都無法達到最低標準的話。」
어깨 위에 얹혀 있던 손이 방향을 틀며 기다란 손가락이 내 목을 가볍게 건드렸다.
擱在我肩上的手轉了個方向,修長的手指輕輕碰了下我的脖子。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수밖에.”
「只能把她從不適合她的位置上拉下來了。」
토해 내듯, 짧게 숨을 내뱉었다. 거 참 부담 한번 무섭게 주시네.
他像要吐出來似的,短促地呼了口氣。這負擔可真夠嚇人的。
“지금부터라도 제 목숨을 걱정하면 될까요.”
「我現在開始擔心我的性命,這樣可以嗎?」
“이런, 오해하게 만들었나 보군. 한유진 군을 아끼는 마음에는 변함없으니 걱정 말게. 위치만 달라질 뿐이야.”
「哎呀,看來是造成誤會了。我對韓有辰小弟的愛護之心不變,所以別擔心。只是位置會有所不同罷了。」
“전처럼요? 아니면 그보다 못해지려나요.”
「會像以前一樣嗎?還是會變得更糟呢?」
“조금은 변하겠지. 목줄이 또 끊어져서야 귀찮으니.”
「會稍微改變吧。項圈再斷掉就麻煩了。」
반항할 생각도 못 하게 확실하게 밟아 놓겠다, 이건가. 역시 나를 완전히 인정한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저 기회만 주었을 뿐.
這是要我別想反抗,徹底將我踩在腳下嗎?看來他果然沒有完全認可我。只是給了我一個機會罷了。
그럴 법은 했다. 귀여워하며 어르던 애완동물이 갑자기 나도 사람이라며 인권 주장하고 나선 것과 다름없을 테니. 이만큼 양보해 주는 것만으로도 대단하지, 뭐.
這倒也說得過去。這就跟可愛的寵物突然主張自己也是人,要求人權沒什麼兩樣。能讓步到這種程度,已經很了不起了。
그래도 말이야. 不過話說回來。
“죄송하지만, 성현제 씨.” 「抱歉,成賢濟先生。」
등받이에 기대듯 고개를 꺾어 들어 올렸다. 나를 내려다보는 눈과 마주쳤다.
他仰起頭,彷彿靠在椅背上。我的目光與那雙俯視著我的眼睛相遇。
“설사 제가 당신에 비해 모자라다 할지라도, 원래대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就算我不如你,也不會回到過去了。」
금빛 도는 눈이 계속 말해 보라는 듯 가늘게 웃었다.
金色的眼眸微微彎起,彷彿在示意他繼續說下去。
“제가 이래 봬도 혼자 몸이 아니라서요. 섣불리 소유권을 주장하셨다간 제아무리 대단하신 세성 길드장님이라 해도 아프게 물어뜯길 겁니다. 어쩌면 치명상까지 입으실지도 모르죠.”
「我雖然看起來這樣,卻不是孤身一人。要是您貿然主張所有權,就算再怎麼了不起的星辰公會會長,也會被咬得生疼。說不定還會受致命傷呢。」
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 피해 주고 싶지는 않다. 성현제와 반목하게 된다면 이기든 지든 크게 다칠 수밖에 없었다. 앞일을 생각해서도 손해가 컸다. 외부의 적이 있는데 내부에서 다툼을 벌이는 것은 옳지 않다. 괜히 전력을 소모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我不想傷害那些珍視我的人。如果我和成賢濟反目成仇,無論輸贏,我都會受到重創。從長遠來看,這損失太大了。在有外敵的情況下,內部爭鬥是不對的。白白消耗戰力是愚蠢的行為。
그러니 내가 숙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지만. 성현제가 원하는 대로 해 주고 주위 사람들을 달래는 것이 제일 좋다고 계속해서 생각은 하지만.
所以,我低頭是最好的方法。雖然我一直認為,按照成賢濟的意思去做,安撫周圍的人是最好的。
‘결국 내가 편한 방식이지.’
「到頭來,這還是我比較習慣的方式。」
희생하고 싶다. 그게 편하다. 빠른 길이기도 하다.
我想要犧牲。那樣比較輕鬆。那也是一條捷徑。
하지만 나 때문에 걱정하고 괴로워하고 아파 가슴을 쥐어뜯는 모습까지 봐 왔다. 상대가 그 누구든, 설사 승산이 없다 해도 나를 위해 무기를 들어 주고 만들어 줄 이들이다. 그것을 더 기뻐할 사람들이다.
但我卻也看過他們因我而擔憂、痛苦、心痛到揪著胸口的模樣。無論對方是誰,就算沒有勝算,他們也會為了我而拿起武器、打造武器。他們會為此感到更高興。
그러니 별수 있나. 끝까지 함께 손을 잡고 머리를 맞대어 고민하고 발버둥 치는 수밖에. 마지막의 마지막에, 더 이상 어떠한 방법도 없다면 결국 흔들릴지도 모른다. 나는 그리 강하지 않으니까. 그래도 아직은 괜찮다.
<p>既然如此,也別無他法。只能到最後一刻都緊握雙手,絞盡腦汁地思考,掙扎到底。在最後的最後,如果真的再也沒有任何辦法,或許我會動搖吧。畢竟我沒那麼堅強。但至少現在還好。</p>
“최소한 멀쩡한 상태로 손에 넣는 건 불가능할 겁니다. 저든, 당신이든.”
「至少想毫髮無傷地將其弄到手是不可能的,無論是我還是你。」
“…그런 식으로 유혹하면 곤란한데.”
「……你這樣誘惑我,我會很困擾的。」
성현제가 중얼거렸다. 또 뭔 헛소리야. 설마 한판 거하게 붙어 보는 쪽이 더 끌린다는 건가. …이제라도 그런 뜻 아니라고 취소할까. 평화가 최곱니다. 대화로 합시다.
成賢濟喃喃自語。又在胡說八道些什麼。難不成是覺得大幹一場比較吸引人嗎?……現在反悔說不是那個意思還來得及嗎?和平最棒了。我們好好談談吧。
“친애하는 한 소장님, 우선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을 추천하지.”
「親愛的韓所長,我建議你先去讀大學。」
“네?” 「是?」
“석시명이 권하였지 싶은데. 흠은 최대한 줄이는 것이 좋다네.”
「我想是石始明勸的吧。缺點最好盡量減少。」
성현제가 다시 테이블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成賢濟再次走向桌邊,開口說道。
“…어차피 특권 입학하면 별로 좋게 비치진 않을 텐데요.”
「……反正特權入學的話,評價也不會太好。」
“특권도 능력이야. 불만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고졸인 채 남는 것보다는 평가가 올라가지. 과정과 수단이야 어찌 되었든 자신의 힘으로 획득한 자리라면 사람들은 의외로 쉽게 받아들인다네.”
「特權也是一種能力。雖然可能會引來不滿,但總比高中畢業就停滯不前要來得好。無論過程和手段如何,只要是憑藉自身力量獲得的地位,人們反而會意外地輕易接受。」
내 맞은편으로 가서 선 그의 시선이 나를 관찰하듯 길게 훑어 내렸다.
他走到我對面,站定,視線像在觀察我似的,緩緩地從上到下掃視了一遍。
“그럼 간단하게. 유진 군의 현재 상태부터 살펴보도록 하지.”
「那麼簡單來說,先從宥辰的現況看起吧。」
무슨 선생님처럼 성현제가 말했다. 저 이 수업 거부하면 안 되겠습니까.
「我不能拒絕這堂課嗎?」
成賢濟說話的語氣,就像個老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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