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눈을 떴다. 눈꺼풀이 무거웠고, 시야는 흐릿하게 번져 보였다. 형광등 불빛인지 햇빛인지 알 수 없는 빛줄기가 정면으로 퍼졌다. 金旼炡은 뭔가를 확인하듯 몇 번 눈을 깜빡였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촬영장에 있었는데, 순식간에 공간이 뒤바뀌니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慢慢睁开了眼睛。眼皮很沉重,视野模糊不清。不知是荧光灯还是阳光的光线朝正前方散开。金旼炡像是在确认什么似的眨了几次眼睛。明明刚才还在拍摄现场,瞬间空间就发生了变化,需要时间来理解到底发生了什么事。

예년보다 일찍 장마가 끝나면서 때 이른 폭염이 시작됐다. 연일 무더위가 지속되는 여름에는 보통 해 뜨기 전부터 배우들을 소집하고 새벽 특유의 푸르스름한 기운이 사라지자마자 카메라를 돌리지만, 오늘은 정오까지 비가 내리는 바람에 촬영이 계속해서 뒤로 밀렸다. 누군가는 제작사 사무실에 전화를 돌려 스케줄 재조정을 논의했고, 또 누군가는 대기 중인 배우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러 분주히 오갔다.
今年梅雨季比往年提前结束,随之而来的是过早的酷暑。在连日酷热持续的夏天,通常会在日出前就召集演员,在黎明特有的青蓝色气息消散后立即开机拍摄,但今天由于雨一直下到正午,拍摄不断被推迟。有人打电话给制作公司办公室商讨重新调整日程,也有人忙着向待机中的演员们说明情况。

아침부터 컨디션이 영 좋지 않기는 했다. 요즘 金旼炡은 일찍 퇴근하고 집으로 가도 잠을 제대로 못 잤다. 끼니는 거르지 않았지만 걸핏하면 체해서 소화제를 달고 살았다. 그래도 혜인이 보여주는 유튜브 쇼츠를 보며 웃었고, 한겸과 머리를 맞대고 스도쿠를 풀었다. 확실히 연기는 잘 하고 볼 일이었다.
从早上开始状态就不太好。最近金旼炡即使早早下班回家也睡不好觉。虽然没有不吃饭,但动不动就消化不良,离不开消化药。不过还是会看着惠仁给她看的 YouTube 短视频笑出声,也会和韩谦头碰头一起解数独。演技确实很好,值得一看。

회차를 늘려달라는 방송국의 요구로 인해 추가촬영 대본이 엊그제 나왔다. 방금 인쇄를 마쳐 뜨끈뜨끈한 원고를 전해 받은 FD는 부랴부랴 일정을 정리해서 매니저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해당 회차의 배우들은 밤을 새워 대사를 외우고 바로 카메라 앞에 서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전제작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막바지까지 모든 게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由于电视台要求增加集数,追加拍摄的剧本前天才出来。刚刚印刷完毕,拿到还热乎乎的原稿的 FD 匆忙整理日程,联系各位经纪人。该集的演员们必须熬夜背台词,然后直接站在摄像机前。所谓的预制作已经名不副实,直到最后一刻所有事情都在疯狂运转着。

그러던 중에 결국 일이 터진 거였다. 기억나는 건 저기 멀리서 무전기를 들고 뭔가를 말하고 있는 탁 감독 뿐이었다. 그다음은 없다. 디렉을 기다리다가 의식을 잃은 건지, 연기를 이어가던 중에 몸이 휘청한 건지도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컷 사인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다가, 순간적으로 시야가 뒤집히고 중심이 무너졌던 것 같다. 주변이 조금씩 또렷해지자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공간을 두리번거렸다. 대기실은 아니었다. 집도 물론 아니었고. 고개를 돌리던 金旼炡은 침대 옆에 있는 모니터를 발견했다. 
就在这种情况下,事情终于发生了。能记起来的只有远处拿着对讲机说着什么的卓导演。之后就什么都不记得了。是在等导演指示时失去意识的,还是在继续演戏过程中身体摇晃的,都不清楚。大概是在努力不错过 cut 信号时,瞬间视野颠倒,重心崩塌了。周围逐渐变得清晰后,金旼炡慢慢起身环顾四周。这里不是休息室,当然也不是家里。转过头的金旼炡发现了床边的监护仪。

한숨이 절로 터져 나왔다. 몸 상태가 썩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병원에 실려 오게 될 거라고는 정말 한 번도 상상한 적 없었다.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촬영은 어떻게 됐을까. 줄줄이 밀릴 텐데. 혜인 언니도 놀랐겠지. 代表님한테 불려갔다는 얘기 들리면 이번에는 진짜 가만히 안 있어. 그 분도 양심이 있으면 이번에는 입 다물고 있어야지. 물론 그런 게 남아 있을 리는. 
不禁叹了口气。虽然知道身体状态不太好,但真的从来没有想象过会以这种方式被送到医院来。担心接连不断地涌上心头。拍摄怎么办呢。肯定会一个接一个地推迟。惠仁姐姐也一定吓坏了吧。如果听说被代表叫去的话,这次真的不会善罢甘休的。那个人如果还有良心的话,这次应该闭嘴才对。当然,那种东西应该早就不剩了。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병실 문이 열렸다. 하얀 가운 차림의 남자는 문간에 멈춰 서서 金旼炡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金旼炡은 그런 남자를 빤히 쳐다보다가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어 앉았다. 그는 망설임 없이 걸어들어와 침대 옆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이윽고 적당한 높이로 침대가 조정됐다.
正当她陷入各种思绪时,病房门开了。穿着白大褂的男人停在门口,凝视着金旼炡。然后摇了摇头,走了进来。金旼炡直直地盯着那个男人,然后靠着床头坐了起来。她毫不犹豫地走进来,按下了床边的按钮。不一会儿,床调整到了合适的高度。


  "조교수 미만은 얼씬도 못하는 VIP 병실을 덕분에 와보네요. 정말 너무 안 감사드려요."
"托您的福,我这个连副教授都不是的人居然能来到 VIP 病房呢。真是太不感谢您了。"


태연하게 던진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속상함과 안도감이 적당히 뒤섞여 있었다. 남자는 구석에 있던 의자를 바짝 끌어당겼다. 가운 주머니에서 펜을 빼 들며 의자에 앉은 남자가 얼굴에 라이트를 비추며 金旼炡을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눈매는 제법 의사다워 보이기도 했다.
虽然是淡然说出的话,但其中却适当地混合着委屈和安心的情绪。男人把角落里的椅子拉了过来。从白大褂口袋里掏出笔坐在椅子上的男人,用灯光照着脸部开始仔细检查金旼炡。锐利的眼神看起来颇有医生的样子。


  "어떻게 지난주에 나온 화보보다 살이 더 빠졌어."
"怎么比上周出的写真还要瘦了。"

  "드라마 촬영 중에는 원래 이랬거든요."
"拍摄电视剧的时候本来就是这样的。"


金旼炡이 대답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손으로 만져봤다. 잡히는 거 하나 없이 밋밋해진 볼이 손끝으로도 느껴졌다. 요 며칠 사이에 이렇게 된 건지, 아니면 몇 달 전부터 그랬던 것인지는 金旼炡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金旼炡一边回答,一边不自觉地用手摸了摸自己的脸。变得平坦、什么都摸不到的脸颊,连指尖都能感觉到。是这几天才变成这样的,还是几个月前就已经如此,金旼炡自己也不知道。


  "원래 이런 거랑 빈혈로 쓰러진 거는 많이 다르죠."
"原本这种事情和因为贫血而倒下是很不一样的。"


목소리에는 타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입술도 일직선으로 굳어졌고, 그새 미간에는 주름이 잡혔다. 몸 상태가 어떤지는 저 쪽이 더 잘 알고 있을 테니 대충 얼버무릴 수도 없었다. 그래서 일단 변명부터 늘어놓았다. 요즘은 스케줄이 많아서 그런 거고, 이번 드라마 끝나면 몇 달은 쉴 수 있을 거라고. 남자는 일 좀 줄이라고 잔소리하며 작게 하품했다. 입을 가리는 손 너머로 눈가의 짙은 다크서클이 보였다. 손을 내리자 피로에 지친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다.
声音里明显带着责备的语气。嘴唇也绷成了一条直线,眉间已经皱起了纹路。身体状况如何那边更清楚,所以也不能随便糊弄过去。于是先开始找借口。说是最近行程太多才这样,这部电视剧结束后应该能休息几个月。男人一边唠叨着让少接点工作,一边轻轻打了个哈欠。透过遮住嘴巴的手,可以看到眼周浓重的黑眼圈。手放下后,疲惫不堪的脸庞完全暴露了出来。


  "어제도 당직이었어?"  "昨天也是值班吗?"

  "응, 오늘까지 당당."
"嗯,今天为止都很坦然。"

  "나한테 일 줄이라고 할 처지는 아닌 것 같은데."
"看起来你也不是能给我安排工作的立场。"

  "저야 한낱 대학병원 전공의 나부랭이지만, 金旼炡xi는 백상에서 인기상 받은 배우님이시잖아요."
"我只是一个大学医院的住院医生小角色,但是金旼炡 xi 可是在百想艺术大赏上获得人气奖的演员啊。"

  "소파에서 눈 좀 붙이고 가든지."
"要么在沙发上眯一会儿再走。"

  "안 돼, 지금도 직원들 몰래 나온 거야."
"不行,现在也是瞒着员工们偷偷出来的。"


남자는 눈을 한참 비비더니 고개를 들었다. 손바닥으로 눈두덩이를 문지르고, 왼손으로 어깨를 주무르고, 주먹을 말아쥐어 목뒤를 두드렸다. 얼굴에는 피곤이 그늘처럼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제대로 밥은 먹고 다니나. 스트레칭을 마친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男人揉了好一会儿眼睛才抬起头。用手掌揉着眼皮,左手按摩着肩膀,握拳敲打着脖子后面。疲惫像阴影一样浓重地笼罩在她脸上。这人到底有没有好好吃饭啊。做完伸展运动的男人再次开口。


  "누가 누굴 걱정해요 선생님. 넌 환자고, 저는 의사예요."
"谁担心谁啊,老师。你是病人,我是医生。"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딱히 반박할 말이 없어 金旼炡은 괜히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넌지시 물어봤다.
看起来是读懂了内心想法。金旼炡找不到什么反驳的话,只好故意咳嗽了几声清了清嗓子。然后试探性地问道。


  "퇴원은 언제인데?"  "什么时候出院?"

  "내일 검사 결과 나오는 거 보고."
"明天看检查结果出来再说。"

  "꼬박 하루 안 걸리는 거 다 알아."
"不到一天就能搞定,这个我都知道。"


金旼炡이 링거 바늘이 꽂힌 손등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테이프로 고정된 바늘에서부터 링거 라인을 따라가듯 고개를 들었다. 수액이 떨어지는 속도는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金旼炡低头看着扎着输液针的手背说道。她顺着用胶带固定的针头沿着输液管抬起头。输液滴落的速度保持着恒定。


  "알면 이참에 좀 쉬다 가세요."
"既然知道的话,就趁这个机会休息一下吧。"

  "그러기에는 제가 백상에서 인기상을 받은 배우라서요."
"话虽如此,但我可是在百想艺术大赏上获得人气奖的演员呢。"


남자는 결국 헛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분위기로 보아하니 검사 결과가 아주 나쁘게 나온 건 아닌 듯하다. 金旼炡은 협탁 위에 놓인 핸드폰을 집어 들어 연락을 확인했다. 화면이 켜지자 알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카톡, 문자, 부재중 전화. 그새 숫자들은 세 자리까지 올라가 있었다.
男人最终苦笑着摇了摇头。从气氛来看,检查结果似乎并没有很糟糕。金旼炡拿起放在床头柜上的手机查看联系信息。屏幕一亮,通知就像瀑布一样涌了出来。KakaoTalk、短信、未接来电。这会儿数字已经上升到了三位数。


  "나 입원했다고 기사 떴어?"
"我住院的消息上新闻了吗?"

  "좀 됐을걸."  "应该差不多了。"

  "代表님은 이런 거 안 막고 뭐 하는 거야."
"代表不管这种事情在干什么啊。"

  "그 소속사랑 계약 올해까지였나? 끝나면 다른 곳 갈 거지?"
"和那个经纪公司的合约是到今年吗?结束后会去别的地方吧?"

  "비밀이야."  "这是秘密。"

  "그 분은 진짜 관상이 안 좋다니까."
"那个人真的面相不好。"

  "요즘 그렇게 사람을 얼굴로 평가하면 큰일 나지만 딱히 틀린 말은 아니기는 해."
"最近这样用脸来评价人会出大事的,不过倒也不算说错。"


金旼炡도 푸스스 웃으며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병실에는 한동안 적막이 이어졌다. EKG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남자는 의자에서 일어나 소파 옆에 있는 냉장고로 걸어갔다. 그러더니 문을 열고 안에서 음료수 하나를 꺼내서 뚜껑을 돌려 열었다.
金旼炡也噗嗤一笑,放下了手机。病房里一时间陷入了寂静。盯着心电图监护仪的男人从椅子上站起来,走向沙发旁边的冰箱。然后打开门,从里面拿出一瓶饮料,拧开瓶盖。


  "의사야, 도둑이야."  "医生啊,小偷啊。"


남자는 들은 척도 않고 한 병을 말끔히 비웠다. 다 마신 뒤에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그대로 소파에 누워 쿠션을 끌어안았다. 
男人装作没听见,把一瓶酒喝得一干二净。喝完后轻叹一声,就那样躺在沙发上抱着靠垫。


  "더워서 입맛 없다고 샐러드 같은 걸로 대충 때우지 말고 식단 제대로 해. 헤모글로빈이 부족하니까 산소 공급이 제대로 안 된 거야. 그래서 어지럼증 느끼는 거고. 다행히 그거 말고는 이상소견 없다고는 하던데아무튼 철분제 처방 나갈 거니까 꼬박꼬박 챙겨 먹어. 밥도 잘 드시고요 좀. 이런 식으로 여妹妹 얼굴 보는 건 정말이지 사양하고 싶거든요. 매니저님 연락 받고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
"别因为天热没胃口就用沙拉之类的东西随便对付,要好好注意饮食。血红蛋白不足所以氧气供应不充分。这就是你感到头晕的原因。幸好除此之外没有其他异常所见...总之会开铁剂处方,一定要按时服用。饭也要好好吃。真的不想再以这种方式见到妹妹的脸。接到经纪人电话的时候心脏都要掉下来了。"


金旼炡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컨디션 관리도 결국 본인 실력이었다. 지금은 건강보다도 주변을 번거롭게 했다는 사실이 더 신경 쓰였다. 드라마를 같이 찍는 배우들부터 현장 스태프, 매니저, 소속사 직원들까지. 저 하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스케줄이 꼬이고, 촬영이 밀리고, 누군가는 그 일정을 맞추느라 밤을 새울 수도 있었다. 손등에 붙은 테이프를 만지작거리던 金旼炡이 쓰린 한숨을 삼켜냈다.
金旼炡慢慢地吸了一口气。状态管理说到底也是自己的实力。现在比起健康,更让她在意的是给周围的人添了麻烦这个事实。从一起拍戏的演员们到现场工作人员、经纪人、经纪公司的职员们。就因为她一个人,许多人的日程都被打乱了,拍摄被推迟了,说不定还有人为了赶上那个日程而要熬夜。金旼炡摆弄着手背上贴着的胶带,咽下了一声苦涩的叹息。


  "알겠다니까요. 언젠가는 슬기로워질 김민준 선생님."
"我知道了啦。金旼炡老师总有一天会变得明智起来的。"

  "민동."  "旼炡。"

  "왜요?"  "为什么?"

  "바빠서 그런 거지"  "是因为太忙了吧"


문장 끝에 붙은 게 마침표인지 물음표인지 분간이 어려웠다. 단정하는 건지 확인하는 건지 알 수 없는 톤이었다. 金旼炡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이불만 만지작거렸다. 새하얀 병원 이불의 촉감이 손끝에서 바스락거렸다. 소파에 누워 있던 남자는 이마에 있던 팔을 내리고 몸을 일으켜 金旼炡을 바라봤다. 눈동자에는 걱정과 의구심이 뒤섞여 있었다. 金旼炡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와 표정을 꾸며냈다. 이런 연기는 그다지 까다롭지 않았다. 더욱이 상대방은 배우도, 감독도 아닌 일반인이었다.
句末到底是句号还是问号很难分辨。不知道是在断定还是在确认的语调。金旼炡没有立即回答,只是摆弄着被子。雪白的病房被子的触感在指尖沙沙作响。躺在沙发上的男人放下搭在额头上的手臂,坐起身来看着金旼炡。眼中混杂着担心和疑虑。金旼炡尽量装出若无其事的声音和表情。这种演技并不算太困难。更何况对方既不是演员,也不是导演,只是个普通人。


  "응, 그것 말고 별일 없어."
"嗯,除了那件事没什么别的。"


부디 그러길 바라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입꼬리를 올리기 위해 힘을 주었지만 그 웃음이 얼마나 자연스러울지는, 연기하는 본인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希望真的如此,她努力挤出一个微笑。虽然用力上扬嘴角,但这个笑容有多自然,连正在演戏的本人都无法确信。









민준이 나간 뒤 한참이 지나서야 병실 문이 다시 열렸다. 부모님과 통화를 마치고 밀린 연락을 확인하던 金旼炡은 어렴풋한 인기척을 느끼고 출입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혜인이었다. 평소보다 창백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문을 닫은 그녀가 말없이 金旼炡을 바라봤다. 이내 金旼炡도 핸드폰을 뒤집어두고 그 시선을 마주했다. 미묘한 정적이 이어졌다. 서로 꺼내야 할 말이 많다는 걸 알면서도, 누구도 선뜻 먼저 입을 열지 못하는 것이었다. 혜인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침대맡으로 다가왔다.
旼炡离开后过了很久,病房门才再次打开。刚结束与父母的通话、正在查看积压联系的金旼炡感觉到模糊的人影,转头看向门口。是惠仁。她脸色比平时更加苍白,小心翼翼地关上门后,默默地看着金旼炡。随即金旼炡也放下手机,与她对视。微妙的静寂延续着。虽然彼此都知道有很多话要说,但谁都无法率先开口。惠仁缓缓移步,走向床边。


  "미안많이 놀랐지 언니."  "对不起……吓到你了吧,姐姐。"

  "응. 진짜 많이."  "……嗯。真的很多。"


짧은 대답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병실 문을 열기까지 혜인이 얼마나 망설였을지, 또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버텼을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金旼炡은 무릎 위에 올려놓은 손을 꼭 잡았다. 괜찮다고,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 어떤 단어도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막연한 위로는 침묵보다 더 무책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这是个简短的回答。而在这个回答里,完整地包含着惠仁在推开病房门之前犹豫了多久,又是怀着怎样的心情熬过这一天的。金旼炡紧紧握住了放在膝盖上的手。想要告诉她没关系,现在一切都过去了,但任何话语都无法说出口。她觉得空泛的安慰可能比沉默更加不负责任。


  "드라마는 일단 다른 배우들 씬 먼저 찍기로 했어."
"电视剧决定先拍其他演员的戏份。"

  "스케줄 또 꼬이겠네."
"日程又要乱了。"

  "그런 걱정은 나중에 해도 돼."
"这种担心以后再说也不迟。"

  "아니 그래도다들 바쁠 텐데 괜히,"
"不过还是……大家都会很忙,没必要,"

  "旼炡아."  "旼炡啊。"


金旼炡은 그제야 고개를 조금 떨구었다. 다정한 한마디가 유난히 가슴을 파고들었다.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는 미안함, 걱정, 다그침, 그리고 차마 하지 못한 말들까지 겹겹이 얹혀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넘긴 순간들 중에, 사실은 아무렇지도 않았던 적이 하나도 없었다는 걸 이제는 서서히 인정해야 됐다.
金旼炡这才稍微低下了头。那句温柔的话语格外深深地刺入了胸膛。呼唤名字的声音里层层叠叠地承载着歉意、担忧、责备,以及那些终究没能说出口的话语。在那些看似若无其事地度过的瞬间中,事实上从来就没有一次真的若无其事过,现在必须慢慢承认这一点了。

 입 안에서 몇 번을 맴돈 말이 끝내 나오지 않았다. 별일 아니라는 말도, 걱정 끼쳐서 미안하다는 말도 지금은 전부 핑계처럼 들릴 것 같았다. 손가락을 괜히 맞잡았다 풀기를 반복하며 金旼炡은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혜인은 여전히 말없이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金旼炡은 괜히 다리를 모으고 다시 손끝을 조심스럽게 움켜쥐었다. 혜인의 아랫입술은 갈라져 있고 눈가에는 피로가 역력했다.
在嘴里转了好几圈的话最终还是没有说出口。说没什么大不了的话,或是说因为让人担心而感到抱歉的话,现在听起来都像是借口。金旼炡无意识地握紧又松开手指,将视线转向一旁。惠仁依然默默地看着自己。金旼炡无缘无故地并拢双腿,再次小心翼翼地握紧指尖。惠仁的下唇开裂了,眼角明显带着疲惫。


  "민준씨 다녀갔어? 검사 결과는 나왔고?"
"旼炡xi来过了吗?检查结果出来了吗?"

  "빈혈기 약간 있대. 헤모글로빈이 적어서 산소가 원활하게아무튼 큰 이상은 없다고 했어."
"说是有点贫血。血红蛋白不足,氧气供应不够顺畅……总之说没什么大问题。"

  "金旼炡 진짜밉다."  "金旼炡真的……讨厌死了。"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에는 짙은 애정이 넘실거렸다. 슬리퍼 물어 뜯다 걸려서 혼나는 강아지처럼 눈치를 살피던 金旼炡도 그제야 작게 웃었다. 조만간 나도 네 옆에 같이 누워 있겠어. 홍혜인이 마치 들으라는 듯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金旼炡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손끝으로 이불을 매만졌다. 
这样说话的声音里满溢着浓浓的爱意。金旼炡像是咬坏拖鞋被抓到而挨骂的小狗一样察言观色,这时才小声笑了起来。过不了多久我也会躺在你身边的。洪惠仁仿佛故意说给人听似的重重叹了口气。金旼炡露出不好意思的表情,用指尖抚弄着被子。


  "회사에서는뭐래?"  "公司那边……怎么说?"

  "뭐라고 할 게 뭐가 있겠어. 당분간 스케줄 안 잡을 테니까 회복에 전념을 다하라는아무래도 박 室长 조인트라도 까고 왔어야 했지?"
"能说什么呢。暂时不安排行程了,让你专心恢复……看来应该带朴室长的关节也一起来才对?"


하루 종일 바짝 긴장해 있던 몸에서 그제야 힘이 빠져나오는 것 같았다. 촬영장에서 일이 터지고 정신없이 보낸 건 반나절 남짓이었지만, 체감상으로는 꼬박 일주일이 지나간 느낌이었다. 아이고 허리야. 앓는 소리가 절로 새어 나왔다. 혜인이 어깨를 주무르며 목을 한 바퀴 돌리고 다시 旼炡을 쳐다봤다. 병원복이 헐렁해서 그런지 오늘따라 유독 더 말라 보였다. 본인 아픈 건 나중 일이고, 주변에 폐를 끼쳤다는 것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속상해할 金旼炡이었기에 홍혜인은 입을 꾹 다물었다.
紧张了一整天的身体这才感觉力气慢慢流失。从拍摄现场出事到忙乱地度过,虽然只是半天多的时间,但感觉上却像是整整过了一周。哎呀我的腰。不由自主地发出了呻吟声。惠仁揉着肩膀转了转脖子,再次看向旼炡。可能是因为病号服太宽松的缘故,今天看起来格外消瘦。自己受伤是后话,金旼炡本来就会因为给周围人添麻烦而感到难过,所以洪惠仁紧紧闭上了嘴。


  "다른 말은 없었어요? 代表님이라든가 이사님이라든가 한 마디씩 보탰을 거 아냐."
"没有别的话吗?代表或者理事应该都会说上一句的吧。"

  "오 代表는 사무실에 없었고, 최 이사는 뭐지금 빨리 병문안 가자면서 설치다가 평소에 좀 잘하시라고 쿠사리 먹었지."
"吴代表不在办公室,崔理事呢...现在急着要去探病,结果被训了一顿,说平时要好好表现。"

  "누구한테?"  "被谁训的?"

  "나한테."  "对我。"


그 말에 金旼炡이 슬며시 웃었다. 혜인은 어깨를 으쓱하며 별거 아니라는 듯 넘겼지만, 사실 그녀 역시 한 소리 제대로 들었던 건 맞았다. 회사 입장에서는 배우 컨디션에 문제가 생기는 이상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고, 현장을 실질적으로 관리하는 매니저에게 그 화살이 돌아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혜인도 그걸 모르지는 않았기에 딱히 억울하지도, 섭섭하지도 않았다.
听到这话,金旼炡淡淡地笑了。惠仁耸了耸肩膀,装作没什么大不了的样子带过,但实际上她确实也被狠狠训了一顿。从公司的立场来看,演员身体状况出现问题的话,总得有人承担责任,而这个矛头指向实际管理现场的经纪人,也许是理所当然的事。惠仁也不是不明白这个道理,所以既不觉得委屈,也不觉得难过。


  "미안. 요즘 많이 힘들었지. "
"对不起。最近很辛苦吧。"

  "정말 괜찮다니까요."  "真的没关系啦。"

  "거짓말."  "撒谎。"

  "안 거짓말."  "不是撒谎。"

  "金旼炡, 언니 바보 아니거든."
“金旼炡,姐姐我又不是傻子。”


金旼炡은 입술을 한 번 꼭 다물었다가 이내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평소 같으면 농담으로라도 얼버무릴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그럴 여력조차 없었다. 혜인이 조금 더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金旼炡을 바라봤다. 시선을 피하고 싶었지만 병실이라는 공간에서는 도망갈 곳도 마땅치 않았다.
金旼炡紧紧抿了一下嘴唇,随即安静地呼了口气。平时的话,哪怕开玩笑也能糊弄过去,但现在连那样的余力都没有了。惠仁稍微向前倾身看着金旼炡。虽然想要避开视线,但在病房这个空间里也没有合适的地方可以逃避。


  "일 때문에 힘든 거라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어."
"如果是因为工作而辛苦的话,无论如何都能解决的。"

  ""

  "드라마 촬영 중에는 다른 스케줄 잡지 말라고, 차기작까지 휴가 길게 달라고 회사에 얘기할 수 있다고 旼炡아."
"拍摄电视剧期间不要安排其他行程,到下一部作品之前给你放个长假,我可以跟公司说的,旼炡啊。"

  ""

  "참는다고 능사가 아니야. 이것 봐. 결국 쓰러지기까지 했잖아."
"一味忍耐不是办法。你看,最后还是倒下了不是吗。"


링거 바늘 주변을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만지작거리며 고민에 빠졌다. 회사에 그런 요구를 하면 결국 혜인이 곤란해질 게 뻔했고, 자신 때문에 또 다른 문제가 생기는 건 원하지 않았다. 더욱이 밤낮없이 이어진 드라마 촬영으로 피로가 쌓인 것도 사실이었으나, 일상을 버겁게 만드는 건 따로 있었고. 대답하지 못하고 소맷자락만 만지작거리는 金旼炡을 지켜보던 홍혜인이 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
她小心翼翼地用手指触摸着输液针周围,陷入了沉思。如果向公司提出那样的要求,最终惠仁肯定会为难,她不希望因为自己再产生其他问题。虽然日夜不停的电视剧拍摄确实让疲劳积累,但让日常生活变得沉重的另有原因。看着无法回答、只是摆弄着袖口的金旼炡,洪惠仁最终先开了口。


  "매니저는 뒀다 뭐할 거냐고요 배우님."
"经纪人留着是要做什么呢,演员nim。"

  "진짜 조금 어지러웠던 거라니까"
"真的只是稍微有点头晕而已……"

  "그래쪄요 우리 겨울이?"  "是这样吗,我们冬天?"


분위기를 바꿔보겠다고 혀 짧은 소리를 낸 건데 다소 질색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도 효과는 있었다. 혜인을 흘겨보며 고개를 저은 金旼炡은 웃음을 꾹 참으려는 듯 입매가 어설프게 올라가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라도 서로의 긴장을 푸는 게 두 사람에게는 가장 익숙한 위로였다. 홍혜인은 金旼炡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어주고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本想通过发出舌头短促的声音来改变气氛,却多少有些厌恶地皱起了眉头。不过还是有效果的。金旼炡瞪了惠仁一眼摇摇头,嘴角却笨拙地上扬着,似乎在努力憋住笑意。即使是用这种方式来缓解彼此的紧张,对两人来说也是最熟悉的安慰方式。洪惠仁轻抚了几下金旼炡的头发,然后看向挂在墙上的时钟。


  "퇴원할 때까지는 드라마고 회사고 나발이고 아무 것도 걱정하지 말고, 제발 너만 생각하면서 푹 쉬어. 나는 내일 아침에 다시 올게."
"出院之前,什么电视剧啊公司啊乱七八糟的都别担心,拜托你只想着自己好好休息就行。我明天早上再过来。"

  "언니도 바로 퇴근해서 집으로 가. 알겠지?"
"姐姐也要马上下班回家去。知道了吧?"

  "몰라요. 오늘까지는 미워 너."
"不知道。至少今天我还是讨厌你。"

  "아 빨리 약속하고 가."
"啊,快点约定好再走。"

  "알겠어. 필요한 거 있으면 바로 연락해."
"知道了。有需要的话马上联系我。"


새끼 손가락을 걸고 엄지를 꾹 누른 뒤에야 표정을 풀고 고개를 끄덕이는 金旼炡이었다. 홍혜인은 뒤따라 웃어 보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한겸이가 안부 대신 전해달래. 金旼炡은 같이 오지 그랬냐며 대꾸하고서 이불을 살짝 걷어냈지만, 이내 홍혜인에게 저지 당하고 정자세로 침대에 앉았다. 팔다리는 안 다쳤어요 매니저님. 배웅은 충분히 할 수 있다구요. 그 의견 역시 가볍게 묵살 당했다. 아시다시피 제가 좀 극성이라서요. 홍혜인은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하며 손을 흔들었다. 병실 문 앞까지 걸어가다 말고 한 번 더 돌아본 그녀는, 괜히 한 마디 덧붙이듯 입꼬리를 올렸다. 진짜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쉬기만 해. 알았지? 이번만큼은 지켜질 약속이길 바라며, 조용히 문고리를 돌렸다.
勾住小指并用拇指用力按压后,金旼炡才放松表情点了点头。洪惠仁跟着笑了笑,慢慢起身。韩谦让我代她问候你。金旼炡反问为什么不一起来,说着轻轻掀开被子,但立刻被洪惠仁阻止,端正地坐在床上。我的手脚都没受伤,经纪人。送行还是可以做到的。这个意见同样被轻易否决了。您也知道我比较较真。洪惠仁顽皮地眨了眨眼,挥了挥手。走到病房门前时又回头看了一眼,她像是故意补充似的扬起嘴角。真的什么都别做,只要好好休息就行。知道了吗?希望这次的约定能够遵守,她静静地转动了门把手。









병실 안은 조용했다. 창밖에서는 낮게 깔린 구름 사이로 저녁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고, 벽걸이 TV에서는 예능 프로그램이 느릿하게 화면을 전환하고 있었다. 金旼炡은 한 손에 리모컨을 쥔 채 베개에 기대고 앉아, 아무 생각 없이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동음이 울린 건 그때였다. 베개 옆에 놓아둔 핸드폰 화면이 밝아지며 이름 하나를 띄웠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하얘졌다. 망설임이 짧게 스쳐 지나갔다. 기사 때문일까.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받지 않으면 더 어색해질 것 같아 천천히 통화 버튼을 눌렀다.
病房里很安静。窗外,夕阳透过低垂的云层洒进来,挂在墙上的电视里综艺节目正缓缓切换着画面。金旼炡手里握着遥控器,靠在枕头上坐着,无神地望着屏幕。就在这时,震动声响起了。放在枕头旁的手机屏幕亮起,显示出一个名字。瞬间脑子里一片空白。犹豫短暂地掠过心头。是因为新闻的事吗。也许这是理所当然的。但如果不接的话感觉会更尴尬,于是慢慢按下了通话键。


  "여보세요."  "……喂。"

  -旼炡아, 괜찮아?  -旼炡啊,你还好吗?


들려온 목소리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지금은 숨소리마다 묘한 조심스러움이 배어 있었다. 헤어진 지 꽤 된 상대와 통화를 하는 것이라서 그런지 어떤 톤으로 말해야 할지 정태준도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다. 평소보다 목소리가 높았고, 말끝에서는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아마 기사를 보고 바로 전화를 걸었을 텐데, 막상 연결되고 나니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金旼炡은 그런 정태준의 심리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도 비슷한 기분이었으니까.
传来的声音和以前没有太大不同。只是现在每一次呼吸都带着某种微妙的小心翼翼。大概是因为要和分手已久的对象通话,郑泰俊似乎也在苦恼该用什么语调说话。声音比平时要高,话尾能感受到细微的颤抖。应该是看到新闻后立刻打来的电话,但真正接通后却不知道该从什么话开始说起,显得有些慌张的样子。金旼炡能够猜测到郑泰俊的这种心理状态。因为自己也是类似的心情。


  - 많이 아픈 거야? 병원에서는 뭐래? 어디 다친 곳은 없고? 지금은 좀 어때?
- 很疼吗?医院怎么说?有没有受伤的地方?现在感觉怎么样?


대답을 미루자 상대방은 다급하게 질문을 쏟아냈다. 짧은 시간 안에 줄줄이 쏟아낸 말이었다. 링거 바늘이 꽂힌 손등이 아직도 미묘하게 아팠다. 정태준의 잇단 질문들이 진심 어린 걱정에서 나온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지만, 동시에 부담스럽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전 남자친구의 관심을 받는다는 게 묘하게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고맙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했다. 金旼炡은 기운이 빠진 듯 숨을 들이쉬고는 병원복 소매를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拖延回答时,对方急切地连珠炮似地抛出问题。这些话都是在短时间内一口气说出来的。插着输液针的手背仍然隐隐作痛。虽然能感觉到郑泰俊接连不断的问题出自真心的担忧,但同时也让人感到负担。在这种情况下受到前男友的关心,引起了微妙复杂的情感。既感激又尴尬,一方面也感到抱歉。金旼炡像是没了力气般吸了口气,摆弄着病号服的袖子开口说道。


  "응. 그냥 빈혈기 있었는데, 더위까지 겹쳐서 그랬던 거야. 쓰러졌다고는 하지만 잠깐이었고, 검사상 큰 이상은 없대. 내일쯤 퇴원할 수 있을 것 같아."
"嗯。只是……本来就有贫血,再加上天热,所以才会这样。虽然说是晕倒了,但只是一瞬间的事,检查结果没什么大问题。明天左右应该就能出院了。"

  - 진짜야? 다행이다. 나는 무슨 큰일 난 줄 알고기사 보고 너무 놀랐어.
- 真的吗?太好了。我还以为出了什么大事……看到新闻吓了一跳。


담담한 대답이었지만 그 안에는 묘한 감정이 얽혀 있었다. 긴 정적이 스피커 너머로도 미적지근하게 흘렀다. 金旼炡은 손에 쥔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별달리 할 말도 없으니 이대로 대화를 마무리 지어야 할 것 같았다. 먼저 끊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스피커에서 다시 정태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虽然是平淡的回答,但其中却夹杂着微妙的情感。长长的静默透过扬声器传来,显得有些温吞。金旼炡低头看着手中的手机。既然没什么特别要说的,似乎应该就此结束对话了。正当她犹豫着是否该先挂断时,扬声器里再次传来了郑泰俊的声音。


  - 혹시 회사랑은 얘기해봤어?
- 你跟公司那边谈过了吗?

  "어떤 얘기?"  "什么谈过?"

  - 우리헤어진 거."  我们…分手了。


金旼炡은 천장을 바라보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잠시 생각했다. 한참 잊고 지냈었다. 관계의 마침표를 찍은 그날 이후, 그와 관련된 일들은 자연스럽게 삶의 바깥으로 밀려나 있었다. 언젠가는 정리해야지 하고 미뤄뒀던 현실과 갑작스레 마주한 느낌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겨우 고른 말은 늘 그렇듯 무난하고 차분한 문장이었다.
金旼炡望着天花板,思考了一会儿该如何回答。她已经忘记很久了。自从那天为这段关系画下句号之后,与她相关的事情就自然而然地被推到了生活之外。感觉就像是突然面对了一直想着总有一天要整理却一直拖延的现实。思考了很久才勉强选出的话语,一如既往地平和而冷静。


  "응. 代表님한테는 말씀드렸고, 아마 홍보팀에서 내부적으로 정리하고 있을 거야."
"嗯。已经跟代表说过了,宣传组应该正在内部整理。"

  - 드라마 첫 방송 날짜 잡혔다고 들었거든. 제작발표회도 있을 거고, 홍보도 많이 돌아야 할 테니까기사 타이밍은 조금 늦춰도 되지 않을까 해서. 중반부 지나고 나서나, 아니면 종방 이후로.
听说电视剧首播日期定了。还会有制作发表会,宣传活动也会很多…所以新闻时机是不是可以稍微推迟一下。中段过后,或者完结之后。


대답이 바로 나오지는 않았다. 감정이 식어 연인과 헤어진 것과, 그것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특히 드라마 방영 중이라면 시청률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제작진과 다른 출연진들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었다. 태준도 그것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과 헤어진 일로 괜한 구설에 오르거나 불필요한 시선을 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먼저 얘기를 꺼냈을 것이었다.
答案并没有立即出来。感情冷却后与恋人分手,和正式公布这件事是完全不同的两回事。特别是在电视剧播出期间,可能会影响收视率,也可能给制作组和其他演员带来损害。太俊也深知这一点,所以应该是出于不希望因为和自己分手的事情而招致无谓的流言蜚语或不必要的关注,才主动提起这个话题的。


  "아마 우리 쪽도 오빠네 회사랑 조율하고 있을 거야."
"我们这边应该也在和哥哥的公司进行协调。"

  - 하긴그렇겠네  - 也是……确实如此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金旼炡은 핸드폰을 귀에서 조금 떨어뜨려 화면을 확인해봤다. 통화 시간이 의미 없이 길어지고 있을 뿐, 스피커 너머로는 정태준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아마 그도 뭔가 말하려다가 망설이고 있는 것 같았다. 
再次陷入了沉默。金旼炡把手机从耳边稍微拿开,确认了一下屏幕。通话时间毫无意义地拉长着,扬声器那边甚至连郑泰俊的呼吸声都听不到。看起来她也想说些什么,但在犹豫着。

金旼炡은 병원복의 소매를 만지작거리며 마음을 정리하려 했다. 이런 상황이 서로에게 편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막상 전화를 끊기에는 어딘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이게 정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던 참에, 스피커 너머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金旼炡摆弄着病号服的袖子,试图整理自己的心情。明知道这种情况对彼此都不舒服,但真要挂断电话又觉得有些过意不去。正当她想着这也许真的是最后一次时,扬声器那边传来了她的声音。


  - 촬영 얼마 안 남았는데 건강 관리 잘 하고.
- 拍摄没剩多少了,要好好保重身体。

  "응, 고마워"  "……嗯,谢谢"

  - 잘 지내. 드라마 챙겨볼게.
- 好好过。我会看你的电视剧的。

  "오빠도 잘 지내."  "哥哥也要好好过。"


이내 전화가 끊겼다. 화면이 꺼지며 병실은 다시 고요에 잠겼다. 金旼炡은 핸드폰을 내려다보다가, 짧은 한숨을 조용히 내뱉었다. 이상했다. 이미 끝난 정태준과는 이렇게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는데, 정작 진심으로 마음을 두었던 사람으로부터는 소식 하나 전해 들을 수 없다는 것이. 어떤 관계는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정리되지만, 어떤 감정은 끝까지 사라지지 않고 마음 한쪽을 무겁게 짓눌렀다. 
很快电话就挂断了。屏幕熄灭,病房再次陷入寂静。金旼炡低头看着手机,轻轻叹了口气。真奇怪。已经结束的郑泰俊还能这样互相问候,但真正用心对待的那个人却连一点消息都听不到。有些关系会随着时间自然而然地整理清楚,但有些感情却始终不会消失,沉重地压在心头一角。

검사님도 기사를 봤을까. 차라리 모르고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金旼炡은 핸드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쓸어내렸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아홉 시였다. 그녀는 리모컨을 집어 들어 무심히 채널을 돌렸다. 뉴스,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들이 차례로 지나갔지만, 어떤 장면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결국 텔레비전을 끄고, 다시 고개를 돌려 천장을 바라보았다. 
检察官也看到那篇报道了吗。真希望她不知道就好了。金旼炡一边这样想着,一边用手指慢慢滑动手机屏幕。看了看时间,不知不觉已经九点了。她拿起遥控器漫不经心地换着频道。新闻、电视剧、综艺节目依次闪过,但她无法专注于任何一个画面。最终关掉电视,再次转过头仰望天花板。

오늘은 하루가 유독 길었다. 촬영장에서 쓰러진 순간부터, 병원에 실려 온 일, 민준이 다녀간 일, 혜인이 와 준 일, 그리고 방금 전 태준과의 통화까지 하나하나가 또렷했지만 어딘가 꿈처럼 멀게 느껴졌다. 金旼炡은 눈을 감았다. 내일이면 퇴원할 것이다. 이제 다시 카메라 앞에 서고, 사람들을 만나고, 웃어야 한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런데 정말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점차 자신이 없어졌다.
今天这一天格外漫长。从在拍摄现场倒下的那一刻开始,被送到医院的事,旼炡来过的事,惠仁来看望的事,还有刚才与泰俊的通话,每一件事都历历在目,却又像梦境一样感觉遥远。金旼炡闭上了眼睛。明天就要出院了。又要重新站在镜头前,见人,微笑。就像什么事都没发生过一样。但是真的能那样生活下去吗。渐渐地失去了信心。









홍혜인의 배웅을 받으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집에 들어가는 것까지만 보고 가겠다는 그녀를 金旼炡은 유난이 너무 심하다며 한사코 거절하고 겨우겨우 차로 돌려보냈다. 그렇게 엘리베이터 앞에서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서로를 뒤로한 채 각자의 공간으로 향했다. 金旼炡이 몇 번이고 괜찮다고 말해야만 혜인은 마지못해 발걸음을 돌렸다.
在洪惠仁的送别下乘上了电梯。她说要看着她进家门才走,金旼炡说她太过分了,坚决拒绝,好不容易才让她回到车里。就这样在电梯前简单打了招呼,各自背对着对方走向各自的空间。金旼炡说了好几遍没关系,惠仁才不情愿地转身离开。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金旼炡은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링거 바늘을 뽑고 남은 자국이 옅은 멍으로 번져 있었다. 그 자리를 조심스럽게 쓸어보다 손가락으로 살짝 눌러보았다. 아직 욱신거리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피부는 이미 아물었지만 그곳에 남아 있는 흔적은 어딘지 모르게 기분을 묘하게 만들었다. 무력했던 며칠이 고스란히 각인된 듯했다. 층수 표시등이 하나씩 올라가는 것을 보며 金旼炡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在回家的电梯里,金旼炡低头看着自己的手背。拔掉输液针后留下的痕迹已经扩散成淡淡的淤青。她小心翼翼地抚摸着那个地方,然后用手指轻轻按了按。还能感受到隐隐作痛的感觉。皮肤虽然已经愈合,但留在那里的痕迹却莫名让人心情复杂。仿佛那无力的几天被完整地烙印在了那里。看着楼层显示灯一个个亮起,金旼炡轻轻叹了口气。

도착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金旼炡은 천천히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섰고, 복도를 따라 몇 걸음 걷다 현관문 앞에 놓인 낯선 상자를 발견했다. 최근에 쿠팡이나 컬리에서 무언가를 주문한 기억은 없었다. 누가 집으로 택배를 보낼 만한 일도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金旼炡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앞으로 걸어갔다. 며칠동안 다소 정신없이 보냈던 만큼 뭔가를 사놓고도 깜빡했을 가능성이 충분했기에 일단 상자를 확인해보자 싶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허리를 숙여 상자를 들었다. 먼저 송장을 살펴봤다. 받는 이에는 본인의 이름이, 그리고 보내는 이에는.
伴随着到达的提示音,门开了。金旼炡慢慢走出电梯,沿着走廊走了几步,发现门前放着一个陌生的箱子。她记不起最近在 Coupang 或 Kurly 上订过什么东西。也几乎没有人会往家里寄快递。金旼炡歪着头走了过去。考虑到这几天过得有些忙乱,很可能是买了什么东西却忘记了,所以想先确认一下箱子。她小心翼翼地弯腰拿起箱子。首先查看了快递单。收件人写着自己的名字,而寄件人那里写着。

이름은 지나치게 익숙했고, 주소 또한 金旼炡은 익히 알고 있었다. 헤어지기 전에 조금씩 짐을 정리했었는데, 미처 챙기지 못한 물건이 있던 모양이었다. 金旼炡은 쓴 웃음을 지으며 도어락 비밀번호를 눌렀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숫자는 정확히 입력됐다. 집 안은 적막했다. 조명이 켜진 복도를 지나 거실에 다다른 그녀는 테이블 위에 상자를 조심스럽게 올려두었다. 그리고 소파 대신 바닥에 천천히 주저앉았다. 金旼炡은 멍하니 그것을 바라봤다. 언제 보냈을까. 이틀 전에 집을 나섰을 때만 하더라도 분명히 없었는데. 기사를 보고 생각난 김에 정리한 걸까. 아니면, 그저 우연히 시기가 겹친 걸까.
这个名字过于熟悉,地址金旼炡也很清楚。分手前曾经一点点整理过行李,看来有什么东西没能及时收拾。金旼炡苦笑着按下了门锁密码。手指微微颤抖,但数字输入得很准确。屋内一片寂静。她穿过亮着灯的走廊来到客厅,小心翼翼地将包裹放在桌子上。然后没有坐沙发,而是慢慢坐在了地板上。金旼炡呆呆地凝视着包裹。什么时候寄的呢。两天前离开家的时候明明还没有。是看到新闻后想起来才整理的吗。还是,只是时机恰好重合了呢。

답을 알 수 없는 추측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몇 번이고 손을 뻗었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조심스럽게 상자를 끌어당겼다. 테이프를 뜯는 움직임도 한없이 조심스러웠다. 마치 깨지기 쉬운 유리 조각을 다루듯 신중하게 상자를 열었다. 날개를 젖혔다. 안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건 이미 촬영을 끝낸 회차의 대본집이었다. 金旼炡은 익숙한 표지를 손가락으로 쓸어보다 한 권을 꺼내 들었다.
无法得知答案的猜测在脑海中盘旋。几次伸出手又停下,反复之后,最终小心翼翼地拉过了包裹。撕胶带的动作也无比谨慎。就像处理易碎的玻璃片一样小心地打开了包裹。掀开了包装。里面整齐放着的是已经拍摄完成的剧本集。金旼炡用手指抚摸着熟悉的封面,拿出了其中一本。

 손에 익은 감촉, 글씨체, 여기저기에 남은 메모 흔적들. 모두 낯설지 않았다. 함께 밤을 지새우고, 아침을 맞고, 각자의 하루를 정리하던 시절이 있었다. 소파에 누워 대본을 읽고 있으면 刘知珉은 조용히 곁으로 다가와 말없이 저를 안아주곤 했다. 그 기억들이 마치 페이지마다 붙어 있는 것만 같았다. 金旼炡은 대본을 한 손에 들고 휙휙 넘겼다. 손끝에서 촤르륵, 종이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책장을 넘기던 손이 어느 순간 멈췄다. 한 페이지가 유난히 활짝 펼쳐졌고, 그 사이에 무언가가 끼워져 있었다.
手感、字体、到处留下的备注痕迹。这些都不陌生。曾经有过一起熬夜、迎接清晨、整理各自一天的时光。当她躺在沙发上读剧本时,刘知珉总是静静地走到身边,默默地拥抱她。那些回忆仿佛贴在每一页上。金旼炡一手拿着剧本快速翻动着。指尖传来哗啦啦的翻页声。翻页的手在某一刻停了下来。有一页特别大地摊开着,中间夹着什么东西。

金旼炡은 숨을 가다듬고 그것을 집어 들었다. 손끝이 약간 떨렸다. 네 칸으로 나누어진 사진 속에 刘知珉이 있었다. 셔츠에 슬랙스를 입고 있는 걸 보면 언젠가의 평일에 찍은 듯했다. 처음엔 무표정한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던 刘知珉은 컷이 넘어갈수록 점점 긴장을 풀더니, 마지막 컷에선 살짝 웃고 있었다. 인생네컷은 정말 한 번 해본 말이었다. 刘知珉이 귀찮다며 거절해도 그러려니 하며 넘기고 별달리 마음에 담아두지는 않았다. 그때는 그랬었다. 그런데 왜 이걸 지금에서야 받을 수 있는 걸까.
金旼炡屏住呼吸拿起了它。指尖微微颤抖着。分成四格的照片里有刘知珉。从她穿着衬衫和西裤来看,应该是某个工作日拍的。最初刘知珉面无表情地看着正前方,随着镜头的切换逐渐放松下来,在最后一张照片里还微微笑着。人生四格照真的只是随口说说而已。即使刘知珉嫌麻烦拒绝了,她也只是想着算了就过去了,并没有特别放在心上。当时是那样的。但为什么现在才能收到这个呢。

서프라이즈로 주려다가 본인도 깜빡했을 거면서. 이걸 이 안에 넣어뒀다는 걸 알았다면 절대 그대로 보내지 않았을 거면서. 떨리는 숨이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사진을 바라보다 손끝으로 조심스레 프레임을 따라 쓰다듬었다. 무의식중에 刘知珉의 얼굴을 따라가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本来想作为惊喜送给她,结果自己也忘记了吧。如果知道把这个放在里面了,绝对不会就这样寄出来的吧。颤抖的呼吸从唇间流出。她凝视着照片,用指尖小心翼翼地沿着相框抚摸着。无意识中沿着刘知珉的脸庞抚摸的手微微颤抖着。

이내 눈물이 뚝, 하고 대본 위로 떨어졌다. 울지 않으려고 애써 입술을 깨물었지만 소용없었다. 물방울 자국이 대본 위로 잇따라 번졌다. 
很快眼泪啪嗒一声滴落在剧本上。我拼命咬着嘴唇想要忍住不哭,但是没有用。水滴的痕迹接连在剧本上晕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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