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그곳에 그대로 216 話 原地不動
‘그래도 아직 파트너긴 하네.’
「幸好,我們還是夥伴。」
자격 미달로 우리의 관계에 대해 재고해 봅시다,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니, 지금 날 부른 목적이 그것일지도 모른다. 그 뒤로 따로 연락도 없고 오늘도 종일 말 한마디 없었다.
我還以為他會說,因為我不夠格,所以要重新考慮我們的關係。不,他現在叫我過去的目的,說不定就是這個。在那之後,他沒有再另外聯絡我,今天也一整天沒說半句話。
머릿속이 복잡해졌지만 일부러 깊게 생각지 않으려 하며 알겠다고, 어디로 가면 되냐고 답장을 보냈다.
我的腦袋很混亂,但我刻意不去深入思考,回覆他:「我知道了,請問要去哪裡?」
나는 페인트칠밖에 못 한다. 그거나 겨우 할 수 있는데, 어쩌라고.
我只會油漆。我連那個都只能勉強做到,不然還能怎麼辦。
“나 잠깐 세성 길드장한테 가 봐야겠어.”
「我得去一趟海星公會會長那裡。」
내 말에 유현이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내 앞으로 다가온 동생이 내 얼굴을 살펴보았다.
聽到我的話,宥賢露出了不悅的表情。他走到我面前,仔細端詳我的臉。
“무리할 필요 없어. 만에 하나 세성 길드와 틀어진다 해도 상대 못 할 정도는 아니야. 지금이라면 충분히 맞설 수 있어.”
「你沒必要勉強自己。就算萬一和海星公會鬧翻了,也不是無法應付。現在的話,我們完全有能力與之抗衡。」
“틀어지긴 왜 틀어져. 세성 길드장이 뭐 하러 기승수에 대장장이까지 포기해야 할 짓을 하겠냐. 별일 아니야.”
「怎麼會出問題。成賢濟那傢伙,有什麼理由要放棄騎乘獸和鐵匠呢?沒什麼大不了的。」
그래, 뭐 별일 있겠냐. 단순히 내가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을 뿐이다. 솔직히 성현제 그 인간 앞에 서면 웬만한 사람은 다 위축될 수밖에 없지 않나. 내가 부족한 게 아니라 평범한 거지.
是啊,能有什麼大不了的。只是我對自己沒信心罷了。說實話,站在成賢濟那個人面前,一般人誰能不感到畏縮呢?不是我不足,只是我太普通了。
유현이와 함께 객실을 나섰다. 성현제가 나를 부른 곳은 호텔 꼭대기 층에 있는 바였다. 층 전체를 비웠는지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이후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다. 너른 복도의 바깥쪽 벽은 유리였다. 통유리 너머로 루프탑 수영장의 물이 조명을 받아 파르스름하게 빛나고 있었다.
我和宥賢一起離開了客房。成賢濟約我的地方是飯店頂樓的酒吧。不知道是不是把整層樓都清空了,從電梯出來後,就沒遇到任何人。寬敞走廊的外牆是玻璃。透過落地窗,屋頂游泳池的水在燈光下泛著藍光。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我在外面等你。」
“그럴 거 없어. 세성 길드장님께서 양심이 있으시다면 바래다주겠지.”
「不用了。如果星辰公會長還有良心,他會送我回去的。」
동생은 대답 대신 복도를 따라 띄엄띄엄 놓인 의자에 앉았다. 저럴 줄은 알았다만.
弟弟沒有回答,而是沿著走廊,隨意找了張椅子坐下。我就知道會這樣。
“무슨 일 있으면 불러, 형.”
「哥,有事就叫我。」
“그러마.” 「好。」
든든하기도 하지. 고풍스러운 문양이 들어간 문을 열었다. 바는 약간 어둑하고 역시나 수영장 쪽 벽면은 유리로 되어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서양식 인테리어지만, 바깥 화단은 대나무가 낮게 심어졌고 일본 옷을 입은 여자 그림과 역시나 일본풍 장식이 걸려 있었다. 하나만 해라, 하나만. 정신 사납다.
真是可靠。我打開了刻有古老圖案的門。酒吧裡有些昏暗,泳池那邊的牆壁果然是玻璃的。整體來說是西式裝潢,但外面的花壇種著低矮的竹子,牆上掛著穿著和服的女人畫像,還有日式風格的裝飾。選一個就好,選一個就好。真是令人眼花撩亂。
“이쪽이네.” 「是這邊。」
성현제는 긴 바 너머에 서 있었다. 등 뒤로 비치는 조명과 반짝거리는 잔들. 맛이 독극물 수준이 아닌 한 저 얼굴만으로도 장사 잘되겠다 싶었다. …일본 반응만 보면 먹고 죽지만 않으면 줄 설 거 같기도 하고.
成賢濟站在長長的吧檯後方。燈光從他身後照來,酒杯閃閃發光。我想,只要味道不是毒藥等級,光憑那張臉就能生意興隆了。……如果只看日本的反應,只要不死人,大概就會大排長龍吧。
그 호들갑스런 방송들을 떠올리자 한결 마음이 차분해졌다. 뇌신의 칵테일, 찌릿찌릿한 맛. 안 돼, 이러다 웃어 버릴라. …유현이는 차가운 아이스블루 색상에 불 피우는? 그런 거 하면 되나. 예림이는… 아니, 헛생각 이쯤 하자. 일본 방송에 물들면 안 돼.
想起那些大驚小怪的節目,我的心情平靜了許多。雷神的雞尾酒,麻麻的滋味。不行,這樣會笑出來的。……宥賢的話,是冰藍色然後點火的?那樣可以嗎?藝琳的話……不行,別再胡思亂想了。不能被日本節目影響。
“요즘 세성 길드 자금 사정이 영 아닌가 봐요, 길드장님께서 부업을 다 하시고.”
「最近星辰公會的資金狀況好像不太好,連會長大人都得兼職了。」
말하는 도중에 아차 싶었지만 그냥 내뱉었다. 그래도 뇌신께서라고 안 한 게 어디냐. 매출 올려드릴 테니 짜릿한 걸로 한 잔 내와 보시죠, 뇌신이시여. 셀프 배경음도 부탁드리겠습니다.
話說到一半才驚覺失言,但還是說了出口。不過,至少沒說「雷神大人」吧。我會幫您提高銷售額的,雷神大人,請給我來一杯刺激的吧。也請您自行配樂。
“확실히 기분은 많이 나아진 모양이로군.”
「看來心情確實好多了。」
자리에 앉으라고 권하며 성현제가 말했다. 바 앞에 비치된 의자에 앉았다. 이러니 진짜 주문이라도 해야 할 거 같은데, 아는 게 있어야지. 여긴 칵테일만 파나? 땅콩 같은 거 안 주나.
成賢濟示意我坐下,我便坐在吧檯前的椅子上。這樣一來,好像真的得點些什麼,但我什麼都不懂。這裡只賣雞尾酒嗎?不提供花生之類的嗎?
“이 동네 방송이 재밌더라고요. 아마테라스 길드도 유쾌하고요.”
「這附近的節目很有趣。天照公會也很有意思。」
사자왕 씨도 일본 무사 씨도 재미있었다. 예림이가 밟아 놓을 거 생각하니 벌써부터 더 재미있어지네. 나도 플래카드 하나 만들걸.
獅子王先生和日本武士先生都很有趣。想到藝琳會把他們踩在腳下,就覺得更有趣了。我也應該做個標語牌。
성현제가 빈 잔을 내 앞에 놓았다. 오래 여기서 일해 온 사람처럼 능숙하게 이것저것 꺼내어 쉐이커에 넣는다. 은빛 통의 움직임에 무심코 시선이 사로잡혔다. 연둣빛 도는 화사한 색조의 음료가 소리도 없이 매끄럽게 잔에 따라지고 장식 빨대가 꽂혔다.
成賢濟把空杯子放在我面前。他熟練地拿出各種東西放進搖酒器裡,就像在這裡工作很久的人一樣。我不經意地被銀色搖酒器的動作吸引了目光。淡綠色調的飲料無聲無息地順滑地倒入杯中,插上裝飾吸管。
그냥 주스 아닌가 싶은 모양새였는데 실제로도 달달했다. 맛있네.
看起來像是果汁,實際上也很甜。真好喝。
“이거 마시라고 부르신 건 아닐 테고, 용건이 뭡니까.”
「你叫我來,應該不是為了請我喝這個吧,有什麼事?」
입안이 달아서 되레 씁쓸하다. 당근과 채찍 아니냐, 이거.
嘴裡甜得發膩,反而覺得苦澀。這不就是胡蘿蔔加棒子嗎?
“제안을 한 가지 할까 하네.”
「我想向你提出一個建議。」
칵테일 잔 옆으로 카드가 놓였다. 검은색의 신용카드다.
雞尾酒杯旁放著一張卡片。是一張黑色的信用卡。
“예전 것은 쓸 수 없게 되었겠지.”
「以前的應該不能用了吧。」
“동업자 때려치우고 예전으로 돌아가자는 소립니까?”
「你是說要我別當合夥人,回到以前嗎?」
어느 정도 예상을 했기에 놀랍지는 않았다.
因為已經有某種程度的預料,所以並不驚訝。
“파트너는 삭제하겠지만 카드는 받지 않겠습니다.”
「我會刪除合夥人,但不會收下卡片。」
그냥 길드장과 사육소 소장. 그 정도로 정리하면 된다. 사실 굳이 파트너니 뭐니 할 필요까지는, 없으니까. 인제 와서 적이 될 거 같지도 않고. 최소한의 협조는 해 주지 않을까.
就公會會長和飼育所所長。整理成這樣就行了。其實根本沒必要說什麼夥伴。反正現在也不可能成為敵人。至少會給予最低限度的協助吧。
“서로를 위해서 간단한 계약서 정도만 작성하죠. 성현제 씨도 세상 망하는 걸 바라진 않을 거 아닙니까.”
「為了彼此,我們就簡單簽個合約吧。成賢濟先生也不希望世界毀滅吧。」
문득 그와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부터 상품처럼 굴었었지. 나도 농담조였고 다른 사람들도 농담으로 넘겼겠지만. 그 후로 삼 개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我忽然想起第一次見到他的時候。從那時候起,他就表現得像個商品。雖然我當時是開玩笑,其他人也當成玩笑。在那之後過了三個月。時間不算長。
가까워지면 이득일 거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우리 편이 되면 무척이나 든든할 테니까. 성현제 자체만으로도 랭킹 1위의 헌터였고 전투예지를 선생님 스킬로 공유 가능한 것은 여전히 놓치기 아까웠다. 해외에도 넓게 뻗어 있을 영향력 또한 말할 것도 없고.
我以為只要靠近他,就能得到好處。最重要的是,如果他能成為我們這邊的人,那將會是非常可靠的助力。光是成賢濟本身,就是排名第一的獵人,而他能以老師技能共享戰鬥預知,這點依然令人難以割捨。更別提他在海外廣泛的影響力了。
그리고 또. 뭐, 그 밖에도 기타 등등.
然後還有。嗯,除此之外,其他等等。
돌이켜 보니 조금 울적해질 것 같다. 내가 모자란 거니 어쩌겠느냐만.
回頭想想,我可能會有點鬱悶。我能力不足,又能怎麼辦呢?
“…생각보다 인내심 되게 약하시네요.”
「……您比想像中還要沒耐心呢。」
결국 퉁명스런 말이 튀어나오고 성현제가 입을 열었다.
最終,不滿的話語脫口而出,成賢濟開口了。
“그 반대라네. 나는 계속 참고 있어.”
「正好相反。我一直在忍耐。」
“계속이요? 툭하면 거슬릴 정도로 못난 F급이라 참으로 죄송합니다.”
「還要繼續嗎?我這動不動就礙眼的醜陋 F 級,真是非常抱歉。」
그렇게까지 참으시는 줄은 몰랐네. 답답하게 해드려서 미안하다고 석고대죄라도 해야 할 듯.
我不知道你忍耐到那種程度。我好像該跪地求饒,說聲抱歉讓你感到鬱悶。
“억지로 캐물을 수도 있지. 이해가 가지 않는 그 태도에 대해서. 한유진 군이 감추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서.”
「我也可以強行追問啊。針對你那令人費解的態度。針對韓誘辰你所隱瞞的一切。」
궁금한 것을 굳이 참지는 않는다며 그가 부드럽게 미소했다.
他溫柔地笑了笑,說他不會刻意忍耐自己好奇的事。
“그러나 나는 한유진 군을 아끼고 있다네.”
「不過,我可是很愛惜韓有辰的。」
“어쩌자는 겁니까.” 「你想怎樣?」
“보호자, 라고 할 수 있겠지. 내 제안은.”
「可以說是監護人吧。我的提議是。」
기다란 바를 따라 성현제가 걸음을 옮겼다.
<p>成賢濟沿著長長的吧檯移動腳步。</p>
“속을 드러내면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다. 하면 페인트칠이 아닌 지지대를 세워야지. 시간을 들여 꼼꼼하고 튼튼하게. 속이 죄 비워진다더라도 버틸 수 있게끔.”
「一旦暴露內心,就會撐不住而崩潰。既然如此,就不是上漆,而是要立起支撐。花時間仔細、牢固地建造。即使內心被掏空,也能夠承受。」
코너를 돌아 바 밖으로 나온 그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일어날까 하다가 그냥 의자만 돌려 마주 보았다. 소리 없는 걸음이 내 앞에서 멈추었다.
他轉過街角,走出酒吧,朝我走來。我本想站起來,但只是轉過椅子與他面對面。無聲的腳步在我面前停了下來。
“그래서 그, 지지대라도 되어 주겠다는 겁니까.”
「所以,你是說要成為我的支柱嗎?」
아니 왜 댁이. 내 친동생도 있고 가족이나 다름없는 애들도, 친구도 있는데.
不是,為什麼是你?我還有親弟弟,還有情同家人的孩子們,以及朋友啊。
“타인에게 의지하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야. 홀로 사는 세상이 아닌 이상 바람직한 모습이기도 하지. 하지만 그 전에 자기 자신의 기틀은 갖추어야 한다네. 모든 것의 중심은 ‘나’이니. 스스로를 제대로 붙잡지 못해서야 주위 모든 것도 쉽게 흐트러지고 말지.”
「依賴他人也不是壞事。除非是獨自生活在世上,否則這也是一種值得稱許的態度。但在那之前,你必須先打好自己的基礎。因為所有事物的中心都是『我』。如果連自己都無法好好掌握,周遭的一切也將輕易地散亂開來。」
“…저더러 자기수행이라도 하라는 겁니까?”
「……您是叫我自我修行嗎?」
“한유진 군은 이미 스스로를 충분히 몰아세우고 깎아내리고 있지 않나. 수행보다는 휴식이 필요하겠지.”
「韓悠辰先生不是已經把自己逼得夠緊,也夠貶低自己了嗎?比起修行,他更需要休息吧。」
“제가 그렇게 한가하지가 않아서요.”
「我沒那麼閒。」
“휴식을 위한 환경을 만들어 주겠네. 완벽하고 세심하게.”
「我會為你打造一個休養的環境。完美又細緻。」
성현제가 다독이듯 상냥하게 말했다.
成賢濟溫柔地說著,彷彿在安撫。
“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如果你接受我的提議。」
그가 몸을 낮췄다.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며 내 시선보다 아래로 내려갔다. 마치 어른이 어린아이에게 위협을 가하지 않기 위해 눈높이를 낮춰 주는 것처럼.
他彎下身子。單膝跪地,視線比我還低。就像大人為了不威脅小孩,而將視線放低一樣。
내가 그간 좀 의지하긴 했었는데,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나올 일인가.
我這段時間是有些依賴他,但也不至於到這種地步吧。
“혹시 잊으신 건가 해서 말씀드리자면 저 스물다섯 살입니다. 나이 많은 건 아닌데 어른이고, 사회생활은 일찍 시작했고요. 덕분에 인생 경험은 보기보다 훨씬 많습니다.”
「怕您忘了,所以跟您說一聲,我二十五歲了。雖然年紀不算大,但也是個大人了,而且很早就開始接觸社會了。託您的福,我的人生經驗比您想像的還要豐富。」
실제로는 서른이니까. 절대 어리지 않다.
<p>實際上我已經三十歲了。絕對不年輕。</p>
“보호자 없는 애 취급할 필요 없습니다.”
「沒必要把她當成沒人要的孩子。」
“어른도 아이도 똑같은 사람이야.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그 밖의 모든 감정을 똑같이 느끼지. 다만 나이를 먹을수록 참아야 할 것과 책임져야 할 것이 하나둘씩 늘어날 뿐이라네. 울고 싶을 때 울지 못하고 웃고 싶을 때 웃지 못한 채 주위의 눈치를 먼저 살피게 되는.”
「大人和小孩都是一樣的人。悲傷、喜悅,以及其他所有情感,感受起來都一樣。只不過隨著年齡增長,需要忍耐和負責的事情會一件件增加罷了。想哭的時候不能哭,想笑的時候不能笑,而是先察言觀色。」
“어른이니까요.” 「因為是大人啊。」
제 마음대로 막 살면 그게 제대로 된 어른이겠냐. 어린아이와 달리 무조건적인 보호 없이 알아서 살아가려면 이것저것 다 참아야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싫어도 억지로 눈 떠야 하고, 쉬고 싶어도 출근해야 하고, 상사 꼴 보기 싫어도 웃어 넘겨야 하고, 먹고 싶은 것도 사고 싶은 것도 모두 지갑 사정에 맞춰 참아야 하고.
難道我隨心所欲地活著,就是個稱職的大人了嗎?和孩子不同,如果想在沒有無條件保護的情況下,獨自生活下去,就必須忍受各種事情。即使早上不想早起,也得強迫自己睜開眼睛;即使想休息,也得去上班;即使不想看到上司,也得笑著帶過;想吃的、想買的,都得配合錢包的狀況忍耐。
나는 그게 평균보다 빠르긴 했지만. 좀 더 일찍 책임지고 참아야 했지만.
我雖然比平均速度快了點,但應該更早負起責任、忍耐才對。
“책임질 필요도 없고, 참을 필요도 없어.”
「你不需要負責,也不需要忍耐。」
달다 못해 이가 썩을 듯한 소리였다.
甜得像是牙齒會爛掉的聲音。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네. 누구도 간섭하지 않아.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책임지지 않아도 되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어도 괜찮아.”
「什麼都不用管,隨心所欲。想做什麼就做什麼,沒有人會干涉你。不用在意別人的眼光,也不用負責。只看自己想看的,只聽自己想聽的,也沒關係。」
“어… 그냥 댁 소유물 되라는 소리 아닙니까.”
「呃……這不就等於叫我變成你的所有物嗎?」
“보호자와 피보호자라네. 홀로 설 수 있을 만큼 튼튼해졌다면 언제든지 독립할 수 있고 보내 줄 수 있는 관계.”
「是保護者與被保護者的關係。如果被保護者已經堅強到足以獨自站立,那麼隨時都能獨立,而保護者也能放手,就是這樣的關係。」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그 무엇보다도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我不太能理解。尤其是他這麼對我的理由。
“진짜, 당황스럽게 친절한 제안이네요. 대가가 뭡니까. 없단 소린 마시고요.”
「真是令人驚訝的親切提議呢。代價是什麼?別說沒有。」
“한유진 군이 감당할 수 있을 때. 그때 모두 이야기해 주었으면 좋겠군.”
「等你韓宥辰能承受的時候。到時候希望你能把一切都告訴我。」
“…그것뿐입니까? 억지로 말하게 할 수도 있는 거 참는 것까진 그렇다고 쳐요. 하지만 보호자 노릇까지 해 주면서 기다리겠다고요? 아니 진짜 대체 왜요?”
「……就這樣?勉強讓你說出來,你還能忍住,這就算了。但你還要當我的監護人,然後等我?不,你到底為什麼?」
“내가 그러고 싶으니까.” 「因為我想這麼做。」
심플한 대답에 할 말이 없어졌다. 날 위해서도 아니고 그냥 자기가 하고 싶어서란다. 저 인간답긴 하네. 결국 부담조차 가질 필요 없다니.
簡單的回答讓我無話可說。不是為了我,只是他自己想做。這倒挺像他的。結果連負擔都不需要有。
“…솔직히 끌리기는 하네요.” 「……老實說,我確實有點心動。」
성현제가 마음먹고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동원해 보호자 노릇을 하려 든다면, 그보다 더 완벽한 돌봄은 없을 것이다. 내 머리로는 잘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如果成賢濟下定決心,動用他所擁有的一切來扮演保護者的角色,那麼就不會有比這更完美的照護了。這簡直超乎我的想像。
지극히 만족스럽고, 행복한 생활이겠지.
那會是極其令人滿足又幸福的生活吧。
내가 회귀하지 않았더라면. 如果我沒有回歸的話。
“하지만 성현제 씨. 너무 늦었어요.”
「但是成賢濟先生。太遲了。」
지금의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동시에 그런 나이기에 성현제가 인내하며 손 내밀어 주는 것이겠지. 내가 포기하고 휴식을 선택할 수 있는 상태였다면, 관심도 제대로 못 받았을 텐데. 아이러니함이 조금 우스웠다.
現在的我無法接受這一切。同時,也正因為我是這樣的我,成賢濟才會忍耐著向我伸出援手吧。如果我處於可以放棄並選擇休息的狀態,恐怕連關心都得不到吧。這份諷刺,讓我感到有些可笑。
“십 년 전, 아니 이십 년쯤 전에 연락하시지 그러셨습니까. 제가 예닐곱 살 때 즈음에요. 그럼 좋다고 따라갔을 텐데. 동생도 데리고서요.”
「十年前,不,大概二十年前,您怎麼不聯絡我呢?那時候我大概六、七歲。那樣的話,我肯定會高高興興地跟您走,還會帶著我弟弟。」
“미안하군. 그땐 나도 아직 미숙했을 때라.”
「抱歉。那時候我也還不夠成熟。」
“그래도 감사합니다.” 「還是謝謝您。」
의자에서 일어나며 손을 내밀었다. 성현제가 내 손을 잡고, 의지해 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잡고 몸을 일으켰다.
我從椅子上起身,伸出手。成賢濟握住我的手,他沒有倚靠過來,但還是握著我的手站了起來。
“인내심이 차고 넘친다 하시니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파트너 씨.”
「您說您耐心十足,那麼往後也請您多多指教了,夥伴先生。」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성현제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내려다보는 것도 나쁘진 않은데, 이 눈높이가 더 익숙하긴 하지. 그가 과장되게 아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我的心情輕鬆不少。成賢濟俯視著我。我俯視他也不錯,但這個高度我更習慣。他誇張地露出惋惜的表情。
“내가 마음먹고 양보를 하면 되레 더 넘어오지들을 않는군.”
「我下定決心讓步,他們反而不肯過來。」
“뭡니까, 들이라니. 저 말고 다른 사람한테도 이런 제안 하셨어요?”
「什麼啊,『們』是什麼意思?您也對我以外的人提出過這種提案嗎?」
“이 정도는 아니고, 예전에 송태원 실장에게 드러나지 않게 뒤를 봐주겠다는 제안을 한 적 있었지.”
「沒到這種程度,我以前曾向宋泰元室長提議,要暗中幫助他。」
“차이셨겠네요.” 「你被甩了吧。」
“그 뒤론 대놓고 감싸 주고 있다네.”
「在那之後,他就公然袒護了。」
정경유착 같은 거라고 욕먹을 짓 아니냐. 송 실장님이라면 그게 더 마음 편하겠지만. 애매하지만 진짜 송 실장님한테 잘해 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정말 애매모호한 잘해줌이다.
這不是會被罵是官商勾結的行為嗎?雖然宋室長可能會覺得這樣比較自在,但這很曖昧,卻又好像是真的對宋室長好。真是模稜兩可的好。
“이건 세성 길드장님의 성의를 봐서 비상용으로 가지고 있도록 하지요.”
「這是看在星辰公會會長誠意的份上,就當作備用吧。」
잔 옆에 놓인 카드를 집어 들었다. 전처럼 아무렇게나 쓸 생각은 없다. 그냥 기념품 정도라고 해 둘까.
<p>我拿起放在杯子旁的卡片。不像以前那樣隨意使用。就當作是紀念品吧。</p>
동생이 기다리고 있으니 배웅은 필요 없다고 말하며 바를 나서기 전. 성현제를 돌아보았다.
在走出酒吧前,我說弟弟還在等我,不用送了。回頭望向成賢濟。
“선심 후하게 써 주신 김에, 부탁 하나만 하겠습니다.”
「既然您這麼慷慨,那我就順便再拜託一件事吧。」
“말하게.” 「說吧。」
“그대로 계셔 주세요. 변하지 않고, 사라지지도 않고. 그대로요.”
「請您保持原樣。不要改變,也不要消失。就保持原樣。」
내가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을 때까지, 라는 말은 입안에서 멈추었다. 떳떳하게 내뱉기엔 아직 자신이 없다. 크루즈에서도 혼자였으면 당당해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直到我能坐上那個位置為止。」這句話在嘴裡打住了。我還沒有自信能光明正大地說出來。即使在郵輪上,如果只有我一個人,也很難理直氣壯吧。
“이왕이면 죽지도 말고요.” 「最好也別死。」
“그러지.” 「就這麼辦。」
저녁 약속이라도 하는 것처럼 가벼운 대답이었다.
那回答輕描淡寫,彷彿只是在約晚飯。
* * *
밖으로 나가자 유현이가 일어나 있었다.
走出門外,柳賢已經醒了。
“앉아 있지 않고.” 「沒有坐著。」
“발소리가 들려서 일어선 거야.”
「聽到腳步聲才站起來的。」
설마 안에서 한 이야기도 다 들은 건 아니겠지. 성현제가 그거 확인 안 해 보고 불렀을 린 없지만.
<p>該不會連我們在裡面說的話都聽到了吧。雖然說,成賢濟不可能沒確認就叫我。</p>
“역시 별일 없었어. 객실 가서 룸서비스 시킬까? 약간 출출하네.”
「果然沒事。去客房叫客房服務嗎?有點餓了。」
저녁 든든히 잘 먹었지만 목욕을 오래 했더니 배가 꺼졌다.
晚餐吃得很飽,但泡了很久的澡,肚子又餓了。
“기분, 좋아 보이네.” 「你心情看起來很好。」
유현이가 작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 녀석 봐라.
宥賢小聲地喃喃說道。你看看這小子。
“또 세성 길드장한테 질투 나냐? 그럴 필요 없다니까. 나한테는 항상 네가 우선이고.”
「又在嫉妒成賢公會長了嗎?根本沒必要啊。對我來說,你永遠是第一位的。」
지금 이 모든 것도 동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現在這一切也都是從弟弟那裡開始的。
“누가 뭐라 해도, 무슨 일이 있어도 유현이 네가 제일 중요해.”
「不管誰說什麼,不管發生什麼事,宥賢你都是最重要的。」
그러니 마음 풀고 야식이나 먹자. 동생이 끄덕거리며 웃었다. 룸서비스 메뉴판… 한글은 없겠지? 가이드 불러야 하나.
「所以放寬心,吃宵夜吧。」弟弟點頭笑了。客房服務菜單……沒有韓文吧?該叫導遊來嗎?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졸린 얼굴로 하품을 길게 했다. 좋은 호텔인 만큼 침구는 편안했지만 잠은 그다지 자지 못했다. 가이드에게 부탁해 TV 채널 편성표 번역한 거 받은 뒤 보다 보니 늦게 잠들어 버린 것이었다.
我早上才剛醒來,就睡眼惺忪地打了個大大的哈欠。這間飯店很好,寢具很舒服,但我卻沒怎麼睡。因為我請導遊幫我翻譯了電視節目表,結果一看就看到很晚,所以才晚睡。
주목적은 일본 헌터계에 대해 알아 보자, 였지만.
主要目的是「去了解日本獵人界」,但。
‘유현이와 예림이 사이에 핑크빛 기류가 맴돌고 있다니.’
「宥賢和藝琳之間瀰漫著粉紅色的氣流。」
시퍼런 살기겠지. 아냐, 살기까진 너무했고. 어쨌든 핑크빛은 개뿔이다. 파릇파릇한 우정의 빛깔, 도 아직은 멀었는데 핑크빛……. 게다가 예림이는 아직 미성년자잖아. 나이도 다섯 살 차이면 많은 편이고. 굳이 엮는다면 차라리 노아 쪽이 낫지 않나.
那應該是森冷的殺氣吧。不,說殺氣又太過了。總之,哪來的粉紅色。連青澀的友情之光都還差得遠,更何況是粉紅色……而且藝琳還是未成年人。年齡也差了五歲,算是差很多的。如果硬要湊對,還不如諾亞呢。
‘그래도 이 둘은 양반이었지.’
「不過這兩位還算好的了。」
제일 기겁한 건 다름 아닌 성현제와 강소영이었다. 아니 이 미친놈들이 어떻게 애를 아저씨랑 엮어? 영국의 금발 미소녀거리며 길드장과 깊은 사이가 아닐까요, 지랄을 하는데 내가 다 방송국을 고소하고 싶어졌다. 게다가 왜 자꾸 영국인이래. 소영 씨 이중국적이고 소속은 한국이거든?
最為震驚的莫過於成賢濟和姜素英了。不,這些瘋子怎麼能把孩子和叔叔扯上關係?他們說什麼英國金髮美少女,還說她和公會長關係匪淺,我真想把電視台告上法庭。而且,為什麼老是說她是英國人?素英小姐是雙重國籍,所屬國籍是韓國好嗎?
‘사랑이 나이도 국경도 인종도 성별도 다 초월한다고 해도 말이야, 인간적으로 어린 쪽이 최소 이십대 후반은 되어야지!’
「就算愛情能超越年齡、國籍、種族和性別,但從人道角度來看,年輕的一方至少也得是二十歲後半吧!」
그것도 많이 봐줘서고 가능하면 삼십대다. 인생 경험 충분히 쌓고 자기 삶 책임질 수준이 되고 나서야 나이 따위 숫자일 뿐이에요! 가 가능한 거지. 애 데리고 양심이 있냐.
<p>那還是我退讓很多,才勉強同意三十多歲。要等人生經驗足夠豐富,能為自己的人生負責之後,才能說年齡不過是數字罷了!帶著孩子還能有良心嗎?</p>
아무튼 난 이 사이 반대다! 문현아 씨와 엮는다 해도 애매할 판에. 아니면 에블린 씨도 있잖아. 뭐 실제론 성현제는 강소영을 그냥 애 보듯 했지만. 강소영 상대는 당연히 아니겠지만 연애한 적 있기는 하겠지. 괜히 궁금해지네.
總之我反對這門親事!就算和文賢娥小姐扯上關係,都還很難說了。不然還有艾芙琳小姐啊。雖然實際上成賢濟只是把姜素英當小孩看。姜素英當然不可能是他的對象,但他應該還是有談過戀愛吧。害我白白好奇起來了。
룸서비스 시킬까 하다가 역시 식사는 다 같이 하는 게 좋을 듯해 조식 먹으러 내려갔다. 밤에 쇼핑 나갔던 예림이와 노아, 문현아가 별의별 물건들을 가득 들고 왔다. 그중엔 짝퉁 피스와 삐약이 인형도 있었다. 삐약이 인형은 챙겨다가 해연 법무팀에 넘기기로 하였다.
本來想叫客房服務,但還是覺得大家一起用餐比較好,便下樓吃早餐。晚上出去購物的藝琳、諾亞和文賢雅帶回了各式各樣的物品,其中還有山寨的 Peace 和小雞玩偶。我把小雞玩偶收起來,打算交給海淵法務組。
“헌터 전문 쇼핑몰도 있었어요!”
「還有獵人專門購物網站呢!」
“헌터 마켓? 그건 어제 말했잖아.”
「獵人市場?那個我昨天說過了啊。」
“아뇨, 일반인들을 위한 헌터 상품이요. 사진이나 브로마이드 같은 거 팔고 있던데요. 사자 인형도 잔뜩 쌓여있고.”
「不,是給一般民眾的獵人周邊商品。他們在賣照片和海報之類的。還有堆積如山的獅子玩偶。」
…연예인 브로마이드 같은 건가? 문득 어제 봤던 유현이와 예림이를 본뜬 인형이 떠올랐다. 귀엽긴 했지. 시간 나면 슬쩍 구경이나 하러 가 볼까.
……是藝人那種宣傳照嗎?我突然想起昨天看到的,以宥賢和藝琳為原型的玩偶。它們確實很可愛。等有空的時候,要不要偷偷去逛逛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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