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한 햇살이 한강 위에서 반짝이고, 수면에 반사된 고층빌딩의 잔상은 희미하게 일렁였다. 평일 오후의 고수분지는 의외로 한적했다. 공원 산책로에서도, 농구 코트에서도, 자전거 도로에서도 인기척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셔츠 단추를 하나 더 풀어낸 刘知珉은 나무 그늘 아래에 대자로 뻗은 강아지를 구경하다 피식 웃고 자세를 바로 했다. 척추 수술은 천칠백만원이라고 알려줬던 누군가의 목소리가 불현듯 떠오른 덕분이었다. 어떻게 금액까지 알고 있냐 물어보니 친오빠가 신경외과 전공의라고 그 전에 얘기하지 않았냐며 뾰로통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던 얼굴까지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려졌다.
제법 오래 만나기는 했다. 촬영에 들어가지도 않았던 드라마는 어느덧 크랭크 업을 목전에 두고 있고, 번번이 제목을 잊어버려 네이버에 金旼炡의 이름을 검색해 방영 날짜를 찾아봤던 刘知珉은 이제 상대 배우는 물론이고 감독과 작가의 히트작까지 줄줄이 꿰고 있었다. 최근 몇 년과 비교하자면 올해는 유독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 것 같았다. 옆 방 영감님 말마따나 나이를 먹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제 경우에는 아무래도. 刘知珉은 손안에 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남들 일하는 시간에 이렇게 밖에 나와 한량처럼 빈둥거린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나 싶었다. 공판 기일을 제외하고는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사무실에 박혀 조서만 붙잡고 살았었는데. 반포 한강공원 근처에서 대기 중이라는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부장에게 쪽지로 조퇴를 알리고, 메신저 수신 확인 알림이 뜨지도 않았지만 일단 기안부터 올리고 책상을 정리했던 것은 어떻게 설명해도 답이 안 나왔다. 수사관이 그 얼굴로 나가면 404호 검사님 연애한다는 소문이 내일 구내식당에서부터 검社长실까지 퍼질 것 같다고 장난스레 말을 걸어왔을 때에야 제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아차렸으니 말이다.
벤치에 기대어 앉은 刘知珉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나온 덕분에 팔자에 없는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사건과 사람에 치여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고 지내는 게 익숙하기는 해도, 이따금씩은 지금처럼 마냥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멀리에서는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느릿느릿 지나갔고, 여름 기운을 물씬 머금은 바람이 뺨을 스쳤다.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진 건 그 무렵이었다. 刘知珉은 순간 당황했지만 가까이에서 맡아지는 향수를 확인하자마자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아예 벤치에 등을 기대고 뒤로 고개를 젖혔다. 나름 참는다고 참아본 건데 속절없이 입꼬리가 올라갔다. 세상에는 의지만으로 해결이 안 되는 일도 존재했다. 刘知珉은 더는 그것이 억울하지도, 서럽지도 않았다.
"밥은 먹었어요?"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요."
"그래서 먹었어요 안 먹었어요."
"나 보면 그거 말고 할 말이 없나 봐."
"어허, 대답을 왜 자꾸 피하지."
반차 내고 퇴근한 검사가 배우 앞에서 엄한 척을 해봤자였다. 물론 조서실에서 마주 보고 있다고 해도 딱히 달라질 건 없었다.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이 천천히 사라지자 시야가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햇빛에 적응하기 위해 刘知珉은 눈을 깜빡였다. 초점이 또렷해질수록 심장박동은 빨라졌다.
"이렇게 중간에 나와도 돼요?"
"연차 많이 남아서 괜찮아요."
"그래도요. 다음 주에 중요한 공판도 있다며."
"일은 일이고, 旼炡xi는 旼炡xi니까."
그녀는 알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만약 이 장면이 드라마의 한 컷이었다면 대본에는 그런 지문이 적혀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문득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눈빛에는 어떤 감정을 담아야 하는지, 침묵으로 전달했을 대사는 무엇이었을지. 마스크를 살짝 아래로 내린 金旼炡은 야트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게 뭐야. 刘知珉은 대답 대신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진짜로 촬영 끝날 때까지 기다릴 거예요?"
"당연하죠."
"네다섯 시간은 더 걸릴 텐데?"
"저 혼자서 잘 놀아요."
어느덧 벤치에 몸을 내린 金旼炡은 마스크를 벗어 왼손에 쥐었다. 기분 탓일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생각이 많아 보이기도 했다. 刘知珉은 마스크 끈을 베베 꼬는 손가락을 바라보다가 결심했다는 듯 숨을 짧게 고쳐 쉬고 제 손을 슬쩍 올려뒀다. 끈을 만지작거리던 손가락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저기 카페 보이죠. 구석진 자리에서 디카페인 아아랑 케이크 먹으면서 셜록 정주행 하려고요."
"……"
"해 떨어지면 공원에서 산책도 좀 하고."
방금 떠올린 것치고는 그럴듯한 계획이었다. 刘知珉은 살며시 새끼손가락을 걸며 말을 이어갔다. 딱 7시까지만 있다가 갈게요. 그 전에 끝나면 연락해요. 분위기가 쳐지지 않도록 나름 밝은 목소리로 말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눈치는 보였다. 쉽지 않은 문제였다. 과연 어디까지가 적당한 선일까. 지금으로부터 몇 달이 더 지나더라도 그에 대한 답은 찾아내지 못할 것 같았다.
"차에 아이패드 있어요. 이따가 가져다줄게요."
"고마워요."
"비밀번호는 언더워터 첫방송한 날이에요. 8월,"
"2021년 8월 12일."
내내 손만 바라보고 있던 金旼炡도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느릿하게 시선이 얽혔다. 刘知珉은 왼쪽 눈을 감았다 뜨며 능청을 부렸다. 뒷조사 좀 해봤어요. 입가에는 감추지 못한 애정이 만연했다.
"다음에는 추첨에도 성공해서 꼭 시상식 방청 갈게요."
"추첨을 성공하는 방법이 따로 있어요?"
"행운의 여신을 회유해 봐야죠."
"그러니까 어떻게."
"이렇게?"
刘知珉이 金旼炡의 손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손바닥을 다정히 감싸 안은 뒤에는 약지 첫마디에 천천히 입술을 가져다 댔다. 그늘 끝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두 사람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손가락이 살짝 떨리는 것이 느껴졌지만 刘知珉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金旼炡을 쳐다봤다. 여름은 감정 또한 한껏 무르익게 만드는 계절이었다. 그러니 함께 있는 순간에는 어떠한 변명도 필요하지 않았다.
거실 조명은 일부러 어둡게 해뒀다. 刘知珉은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했다. 화면 속에서는 생방송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드레스와 턱시도로 차려입은 연예인들이 끊임없이 카메라에 포착되었고, 관객석에서는 박수 소리와 환호성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연말에도 시상식 같은 프로그램을 따로 챙겨서 본 적이 없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집중력을 잃어가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때마다 刘知珉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대기실에서부터 무대와 관객석 사진까지 실시간으로 공유받은 덕분에 이따금씩은 저 역시 코엑스 홀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방송부문 연출상 수상이 시작되었을 때에야 등을 곧게 세우고 앉아 볼륨을 높였다.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온 이름 모를 배우는 큐시트에 적힌 멘트를 읽으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각 드라마의 하이라이트 장면들이 대형 스크린에 하나씩 비추어진 뒤에는 후보 소개 영상으로 컷이 넘어갔다. 刘知珉은 반쯤 남은 아이스티로 목을 축이고 양손을 겹쳐 잡았다. 시상자는 금색 봉투를 뜯고 안에 적힌 것을 확인하고, 이내 반듯한 미소를 지으며 호명했다. 심연으로부터 송재희 연출님. 화면이 전환되며 카메라가 시상자를 비추었다. 마치 제 일처럼 박수를 치던 刘知珉은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소감을 말하는 연출의 사진을 찍어 메시지와 함께 보냈다. 3관왕 미리 축하해요. 읽음 표시는 떠오르지 않았다.
영화, 방송, 연극에서 각각 수상자를 선정하는 만큼 방송은 꽤나 오래도록 이어졌다. 인기상은 2부 마지막에야 발표가 되었다. 소파 아래에서 아이스크림을 퍼먹으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刘知珉은 시상자를 소개하는 사회자의 멘트를 듣고 자세를 바로 했다. 입에 물고 있던 플라스틱 스푼은 테이블 끝에 내려두고 텔레비전 가까이에 앉아 화면을 올려다보는 것이었다. 각자가 응원하는 연예인의 이름을 외치는 소리가 관객석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고, 무대 위 스크린에는 남녀 후보자들의 얼굴이 차례로 떠올랐다. 여자 아이돌이 마이크를 잡고 입을 열었다. 2025년 제63회 백상예술대상 PRIZM 인기상.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또렷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태준님 축하드립니다.
카메라는 즉시 수상자를 찾아 클로즈업했다. 그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주변 사람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었다. 리모컨을 쥔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정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로 향하는 동안 시상자로 나온 배우는 여자 인기상 발표를 위해 금색 봉투를 들어 올렸다. 남자는 천천히 봉투를 뜯어 종이를 펼쳐봤다. 소리 없는 감탄을 내뱉은 그가 정태준을 슬쩍 쳐다보고서는 마이크 앞으로 다가갔다. 바로 다음 수상자를 발표하겠습니다. 金旼炡님, 축하드립니다. 이어서 또 다른 폭발적인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채널 버튼을 누르려던 刘知珉은 리모컨을 구석으로 밀어내고 무릎을 끌어안았다.
金旼炡이 무대로 향하는 동안 화면은 그녀의 걸음걸이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담아냈다. 길게 늘어진 드레스 자락이 바닥을 스치며 흘러가는 모습, 무대 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가는 모습, 그리고 마침내 정태준과 나란히 서게 된 모습까지. 어쩌면 방송국도 이 장면을 고대하고 있었을 터였다. 객석에서는 연신 탄성이 들려왔다. 여기저기에서 번쩍번쩍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정태준이 먼저 수상소감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큰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이내 호흡을 가다듬으며 차분하게 소감을 이어갔다. 항상 응원해주시는 팬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애써 모른 척 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다. 누가 봐도 잘 어울리는 커플이라고 할 텐데 고작 刘知珉이 뭐라고. 그깟 진심이 뭐라고. 수상소감을 마치고 옆으로 비켜서는 남자를 바라보던 刘知珉은 결국 쓰게 웃었다. 각자에게 어울리는 역할이 있는 거다. 그것만큼은 인정해야 했다. 마이크 앞에 선 金旼炡이 입술을 달싹이다 숨을 고쳐 쉬었다. 눈동자에는 물기가 가득 어려있었다. PRIZM 인기상. 刘知珉은 자막이 사라지기 전에 사진을 찍어두고 화면을 올려다봤다. 金旼炡은 가족과 팬, 소속사, 함께 작업한 스태프들에게 차례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소감이 마무리 될 즈음 카메라는 두 사람이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롱샷으로 잡아냈다. 무대 위 조명이 반짝이는 가운데 정태준과 金旼炡이 나란히 트로피를 들고 있는 장면은 시상식의 하이라이트인 것처럼 화면을 가득 채웠다.
刘知珉은 잠금을 푼 핸드폰을 내려다봤다. 축하해요. 진짜 많이. 짧고 밋밋한 문장이었지만 전송 버튼을 누를 때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사방에서 울려 퍼지던 박수갈채가 사라지고 카메라의 시점이 바뀌어도 핸드폰을 손에 꼭 쥔 채 가만히 앞만 바라봤다. 3부에서 뵙겠다는 안내 이후로 한동안은 광고만 이어졌다. 수십 분 후에 광고가 끝나고, 시상식이 재개 되고, 모든 부문의 수상이 끝난 뒤 드라마 로고가 화면 우측 상단에 떠올라도 刘知珉은 말없이 자리를 지켰다.
"어제는 코디가 제대로 미쳤다니까요. 참고로 positive에요. 가장 심각하게 미친 건 얼굴이기는 하지만 진짜 와…스타일링이 역대급이었어요."
점심을 마치고 지검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수사관의 손에는 테이크아웃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들려 있었다. 刘知珉 역시 같은 음료를 들고 천천히 걸음을 맞추었다. 6월 한낮의 뜨거운 햇살이 아스팔트를 달구고 있었지만 그늘진 인도는 그나마 견딜 만했다. 반면 분주하게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은 몇 달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서초동 법조단지와 썩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검사님도 본방으로 보셨죠?"
"그럼요."
"솔직히 2025년 백상은 필모에 따로 넣어야 해요. 우리 旼炡이는 어떻게 날이 가면 갈수록 더 외모에 물이 오르는 걸까요."
刘知珉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케줄 하는 중에 틈틈이 보내준 사진을 놓고 보면 실제 방송보다도 더 많은 것을 구경 셈이었지만 남들 앞에서 그런 얘기를 꺼낼 수는 없었다.
"맞아요. 旼炡xi 말고 다른 연예인은 하나도 눈에 안 들어왔어요."
"그쵸? 저 진짜 카메라에 旼炡이 잡힐 때마다 입을 못 다물었어요. 그 얼굴로 청춘 드라마를 찍고 있다는 거잖아요. 벌써 재미있다. 연말에 또 일 내겠어 우리 旼炡이가."
마찬가지로 별다른 대답 없이 그냥 듣고 있었다. 같은 사람을 두고 대화하고 있는 것 같아도 상황은 무척이나 달랐다. 수사관에게 金旼炡은 화면 너머의 연예인이었고, 刘知珉에게 金旼炡은 함께 아침을 먹고 서로의 출근길을 배웅하는 동거인이었다. 본인이 어떤 이를 마음에 두고 있는지 새삼스레 깨닫게 된 刘知珉은 자정 무렵의 전화를 곱씹어보며 컵홀더를 매만졌다.
"연출상만 받은 건 살짝 아쉽기는 해요. 올해는 후보가 너무 쟁쟁했어."
"대부분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사실 최우수 연기상은 후보에 오른 것만 해도 충분히 대단한 거거든요. 심지어 2년 연속 노미에요. 이십 대 중반인데 벌써 이 정도면…서른 되기 전에 연기대상에서 대상 받는 거 아닌가 몰라요."
"그러게요. 지금도 잘하는데 몇 년 뒤에는 얼마나 더 잘하려나."
"제발 올해 탈액터스하고 꽃길만 걷게 해주세요. 우리 애 부족한 거는 딱 하나에요. 소속사."
횡단보도 앞에서 멈추어 선 刘知珉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 카페 옆에 있는 사진 부스가 시야에 들어왔다. 하늘색과 하얀색으로 꾸며진 작은 부스는 오피스텔 근처에도 존재했다. 이것도 다 추억이니까 한 번 찍어보자고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의 刘知珉은 뭐가 그렇게 귀찮은 게 많아서 번번이 거절만 했을까. 뒤늦은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刘知珉은 반쯤 남은 커피를 단번에 비워냈다. 제 것에만 따로 샷을 추가하지 않을 텐데 유독 뒷맛이 썼다.
"검사님 혹시 旼炡이 인스타 팔로우하셨어요? 어제 퇴근길에 올린 셀카가 정말 돌았는데 카톡으로 보내드릴까요?"
"아…네, 해요. 하고 있어요."
사실 刘知珉은 金旼炡의 SNS를 굳이 팔로우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일상을 알 수 있었다. 인스타에 없는 사진도 刘知珉의 핸드폰에는 보관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오늘 점심은 뭘 먹었는지, 드라마 촬영은 언제쯤 끝나는지, 다음 주 스케줄은 어떻게 되는지 직접 물어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곧이곧대로 이야기 하면 열사병 환자 취급 받을 확률이 매우 높으니 대충 얼버무리고 딴청을 피웠다.
"뒤풀이 분위기도 되게 좋았나 봐요. 2차에는 드라마 찍었던 배우들 다 온 것 같던데."
"그런 건 또 어떻게 아시는…"
"최 감독님 인스타에 이렇게 올라와 있어요."
"그렇구나."
손에 쥔 핸드폰이 짧게 진동했다. 刘知珉은 옆에 있는 수사관의 눈치를 살피다 조심스럽게 화면을 살펴봤다. 하단에는 메신저 알림이 떠 있었다. 재빨리 잠금을 풀고 대화창에 들어갔다.
메시지는 간단했다. 여기에서 저녁 먹으려고 하는데 검사님 생각은 어때요. 刘知珉은 첨부되어 있는 링크를 확인해보지도 않고 답장부터 작성했다. 좋아요. 너무 성의 없어 보이나 싶어 고민한 것도 잠깐이었다. 이모지를 덧붙이는 건 저와 그다지 어울리지도 않았으며 상대방에게도 과하게 느껴질 수 있었다. 화면 위에서 망설이던 손가락이 전송 버튼을 눌렀다. 기대와는 달리 메시지를 확인했다는 표시는 바로 나타나지 않았다.
"뭘 보고…그렇게 웃으세요? 검사님 진짜 연애하시는 거예요? 누구랑요? 언제부터요?"
"저요? 아뇨, 그냥 기사 보고 있었어요. 어제 백상 레드카펫."
"이데일리는 꼭 보세요. 서 기자님은 거의 준홈마 수준으로 사진 찍어서 올려줘요."
刘知珉이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다 엄지손가락으로 핸드폰 액정을 밀었다. 다행히 수사관은 별다른 의심 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쉰 刘知珉은 그녀가 알려주는 무대 인사, 팬 사인회 등 각종 행사 참석하는 방법을 메모장에 받아적으며 걸음을 옮겼다.
"솔직히 약간 세상이 저를 속이는 느낌이기는 해요. 유 검사님도 좋아하는 연예인이 있다니."
"왜요?"
"올해 초에 나온 천만 영화는 여전히 제목도 모르시고 넷플에는 다달이 기부하시는 건지 오겜, 더글로리, 폭싹 전부 안 봤다고 하셨으니까?"
"사람은 언젠가 변하더라고요. 취향이 됐든, 성격이 됐든, 습관이 됐든 조금씩."
"그렇기는 하죠. 아무튼 좋은 변화인 것 같아요. 너무 일만 하면 스트레스 받잖아요."
어느덧 청사 대문이 보였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刘知珉은 재킷을 뒤적여 공무원증을 꺼내 들었다. 그래도 다섯 시간만 지나면 만날 수 있으니까. 사무실로 향하는 걸음이 어제보다는 가벼워졌다.
식당에서 나와 차에 오른 刘知珉이 디스플레이 속 내비게이션을 만지작거렸다. 검색 기록을 한참 아래로 내려야만 제가 찾았던 그 주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刘知珉은 목적지가 설정된 것을 확인하고 컨트롤러로 볼륨을 조정했다. 초행길은 아니었으나 이쪽으로는 자주 다니지 않았던 만큼 평소보다 집중해서 안내를 들었다. 도로는 예상보다 한산했다. 차창 밖 풍경이 흐르듯 지나갔다. 이른 저녁부터 내내 흐렸던 하늘은 이제 완전히 어두워졌고, 도심의 조명들이 천천히 제 색을 밝히고 있었다.
"마지막 출근은 언제예요?"
"다다음주이기는 한데 아마 계속 추가 촬영 잡힐 거예요 "
"그렇구나. 방송 날짜는 정해졌어요?"
"정확한 날짜는 아직 안 나왔어요. 감독님은 가을 개편에 맞춰서 들어갈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刘知珉은 고개를 끄덕이며 좌회전 신호를 기다렸다. 조수석을 스치는 대시보드 불빛 아래로 金旼炡의 옆모습이 드러났다. 촬영 막바지라 그런지 턱선이 유독 도드라졌다. 홍 매니저가 잘 챙겨주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괜히 속상했다. 초록 불이 켜진 줄도 모르고 조수석을 바라보던 刘知珉은 뒤차가 클락션을 울렸을 때에야 천천히 엑셀을 밟으며 교차로를 통과했다.
"다음 작품 들어갈 때까지는 스케줄 없는 거예요?"
"아예 없지는 않고 가끔 광고나 화보 촬영해요. 대본 보내오는 감독님들이랑 미팅 잡히기도 하고."
내비게이션에서 목적지 근처라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刘知珉은 속도를 조금씩 줄이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아주 늦지 않은 저녁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도로를 오가는 차량은 많지 않았다.
"검사님은 여름휴가 가요?"
"네. 이번에는 꼭 다녀오려고요."
"그렇구나."
"주말 끼면 일주일 정도는 시간 뺄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느덧 아파트 후문 근처에 다다랐다. 刘知珉은 길가에 차를 세우고 비상등을 눌렀다. 에어컨을 켜둔 채로 두 사람은 잠시 조용히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는 단지 내부를 순찰하는 경비원이 천천히 지나갔다.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어 둔 刘知珉이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金旼炡은 손에 쥔 핸드폰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느린 박자의 팝송이 차 안을 고요히 채웠다.
"짐 챙길 거 있으면 저도 같이 가서 도와줄까요?"
버클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조수석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가만히 기다리던 刘知珉이 입을 열었다. 旼炡xi. 도착했어요. 그녀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거렸다. 노래가 끝나고 광고가 이어졌다.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오늘따라 침묵이 어딘가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손가락으로 핸들을 톡톡 두드리던 刘知珉은 숨을 짧게 고쳐 쉬고 안전벨트 버클을 풀었다.
찰칵하는 소리가 차 안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金旼炡이 잠시 움찔하는 것 같았지만 여전히 고개는 들지 않았다. 한동안 차 안에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광고 멘트만이 공허하게 맴돌았다. 말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점차 길어져 갔다. 디제이가 노래 소개를 마무리할 즈음, 정적을 가르고 운전석으로 목소리가 넘어왔다.
"…검사님."
"네."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金旼炡의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刘知珉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려고 했지만, 입술을 떼기 전에 다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까지 할래요?"
처음에는 잘못 들었나 싶었다. 그만큼 현실감이 없었다. 천천히 문장을 곱씹어봤다. 여기까지. 그 말을 꺼낸 金旼炡은 아직까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刘知珉은 손을 뻗으려다 멈칫하고 주먹을 말아쥐었다.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느껴지는 분위기만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는 순간이 있었다. 느릿하게 입술을 연 刘知珉의 목소리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잔잔했다.
"주말에는 비 소식이 있더라고요."
"……"
"올해는 장마가 조금 길 거래요. 그거 끝나면 또 엄청 덥겠지."
"……"
"그리고 또……"
어떤 이야기를 더 꺼내야 할까 고민했지만, 전할 수 있는 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결국 입술 끝까지 올라온 말들은 아무런 위로도 건네지 못하고 사라졌다. 시선은 오래도록 金旼炡에게 머물렀다. 눈으로라도 더 오래 붙잡아 두고 싶어서, 차마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바빠도 끼니는 거르지 말고요."
차 안은 더욱 조용해졌다. 刘知珉은 운전석 손잡이 근처를 더듬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잠금이 풀리는 특유의 둔탁한 기계음이 귓가에 맴돌았다. 金旼炡은 쥐고 있던 핸드폰을 천천히 뒤집었다. 도어 손잡이에 손을 얹는 동작도, 앉은 자세를 고쳐잡는 움직임도 특별할 것 없이 자연스러웠다. 이제 평소처럼 내리고, 평소처럼 인사하면 되는 일이었다.
"旼炡xi."
"…네."
"조심히 들어가요."
金旼炡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조수석 문이 열렸다. 차에서 내리는 그녀를 刘知珉은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파트 주차장 출입문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을, 차츰 멀어지는 그 뒷모습을 계속해서 바라봤다.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아서 그랬던 것도 같다. 헤어졌다고 할 수 없으니까. 애초에 저희들은, 그러니까 이건 그저. 입술 사이로 짤막한 한숨이 새어나갔다. 刘知珉은 왼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린 뒤 헤드레스트에 머리를 기댔다. 뒷좌석에 덩그러니 놓인 꽃다발이 룸미러에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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